'세기의 여정' 앨범, 그라모폰지 '올해의 음반' 주목…내달 4일 예술의전당 리사이틀

난곡(難曲)으로 악명 높은 파가니니의 24개 카프리스 전곡을 녹음한 데뷔 앨범을 2017년 16세의 나이로 스웨덴의 세계적인 클래식 레이블 BIS에서 발매했다.
17세에는 두 번째 음반 '사랑의 인사'를 낸 데 이어 지난해에는 세 번째 음반 '세기의 여정'(Journey through a Century)을 선보였다.
올해 8월엔 오스모 벤스케 음악감독이 지휘하는 서울시향과의 협연으로 윤이상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3번의 실황 녹음앨범을 내놨다.
이 가운데 윤이상과 펜데레츠키 등 20세기 현대음악가들의 바이올린 독주곡들을 모아 작년 내놓은 '세기의 여정'은 영국의 세계적 권위의 클래식 전문지 그라모폰으로부터 '이달의 음반'과 '올해의 음반'으로 주목받았다.
내년 초에는 폴란드 작곡가 카롤 시마노프스키의 바이올린 전곡 연주 앨범도 발매할 계획이다.
녹음은 이미 마쳤고 후반 작업이 진행 중이다.
박수예는 다음 달 4일엔 꿈에 그리던 첫 국내 리사이틀도 예술의전당에서 연다.
어려서부터 독일에서 공부하고 연주한 탓에 국내에서는 협연이나 음악 페스티벌 무대에 주로 서 온 그는 이번에 그리그, 라벨, 시마노프스키, 브람스, 비에니아프스키 등 한국 팬들에게도 친숙한 낭만주의 작품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네 살에 바이올린을 처음 '발견'한 뒤 아홉 살에 부모와 함께 대구에서 베를린으로 이주해 유럽 무대에서 활약 중인 박수예는 지난 24일 예술의전당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젊어서 반짝했다가 사라지는 연주자는 되지 않겠다"고 했다.
--이번이 국내에서 하는 첫 정식 리사이틀인데 소감은.
▲ 기대하던 리사이틀이어서 설레고 기쁘다.
이번에 택한 곡들은 내가 가장 해석을 잘 할 수 있는 곡들이다.
첫 리사이틀이다 보니 너무 난해하지 않은 곡으로 낭만주의 레퍼토리에서 친근한 곡들로 골랐다.

16세에 낸 첫 앨범은 악마적 기교로 유명한 파가니니 카프리스 전곡 연주 앨범인데 어떻게 이런 어려운 곡을 데뷔작으로 골랐나.
▲ 스승인 울프 발린 선생님이 BIS 레이블에서 음반을 많이 내서 BIS 대표와 가까운 사이다.
발린 선생님이 BIS 대표에게 내 얘기를 지나가면서 했는데, 어느 날 BIS 대표가 내 연주 영상을 본 뒤 발린 선생님에게 '농담 반 진담 반' 파가니니 카프리스를 할 수 있냐고 물었다고 한다.
선생님은 그 얘길 듣고 내게 파가니니 카프리스 가능하겠냐고 물어왔다.
지금 생각하면 잘 알지도 못하고 대답한 건데, 단번에 하겠다고 했다.
사실 그전에도 카프리스 24곡 전곡 연주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준비부터 녹음까지 엄청나게 힘들었다(웃음). 그런데 그게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아니었나 싶다.
그 이후 계속 BIS 레이블로 음반을 내고 있다.
--울프 발린(독일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국립음대) 교수는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다.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
▲ 아홉 살 때 대구에서 바이올린을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의 마스터클래스가 서울에서 있었다.
당시 마스터클래스에는 참가하지 못하지만, 지인의 소개로 인사를 드리러 찾아갔는데 "악기를 꺼내 한번 연주해보라"고 했다.
나는 당시 배우던 쉬운 곡을 하나 연주했고, 그 자리에서 발린 선생님이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셨다.
며칠 뒤 연락이 와서 베를린으로 조기유학을 권유하셨고, 부모님은 고민 끝에 베를린으로 과감히 이주를 결정했다.
그렇게 나는 아홉 살에 독일로 건너갔다.
당시 너무 어려서 그게 그렇게 큰일인 줄도 몰랐다.

▲ 내가 이 자리에 이렇게 설 수 있는 것,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이다.
음악 자체를 사랑하게 만들어 주셨고, 바이올린뿐 아니라 인생에 대한 조언을 많이 해주신다.
읽어보라며 책도 많이 주신다.
특히 바이올린밖에 모르는 내게 음악의 세계는 바이올린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려 주셨다.
--스승이 젊은 연주자들의 콩쿠르 출전에 반대한다고 들었다.
▲ 어려서 너무 콩쿠르 준비에 집중하다 보면 음악에 대한 감정이나 시야를 좁힐 수 있다는 게 발린 선생님의 생각이다.
물론 어린 나이로 콩쿠르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거두고 훌륭한 음악가로 성장하는 연주자들도 많지만, 나는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음악적 성장을 추구해온 것 같다.
그래도 이제는 학부 과정을 졸업도 했으니 나가고 싶으면 나가보라고 말씀하신다(웃음).
--바이올린을 어떻게 시작했나.
▲ 네 살 때 부모님과 함께 한 레스토랑에 갔는데 거기 현악사중주 앙상블이 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바이올린만 뚫어질 듯 쳐다보던 내가 연주가 끝나자마자 달려가 바이올린을 달라고 조르고 젓가락으로 연주하는 시늉을 했다고 한다.
이후 온종일 바이올린 얘기만 하는 내게 엄마가 장난감 바이올린을 사주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정식으로 레슨을 받기 시작한 것은 5살 때부터다.
--작년에 서울시향과 윤이상의 바이올린 협주곡 3번을 연주하고 올해 실황 앨범도 냈다.
이 음반도 호평을 받았는데, 윤이상의 곡들을 자주 연주하나.
▲ 윤이상 선생의 음악은 항상 내 레퍼토리에 있다.
작년에 낸 '세기의 여정' 앨범에 윤이상 선생의 바이올린 독주곡을 녹음하기도 했다.
협주곡 3번은 작년에 처음 도전해봤다.
가끔 들어보긴 했는데 그 곡으로 연주하고 녹음까지 하게 될 줄 몰랐다.
윤이상 선생의 음악을 좋아한다.
현대곡이지만 낭만적이고, 음악이 나와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협주곡 3번이 그렇다.
윤이상 선생은 매우 중요한 작곡가로, 독일 사람들도 인정하고 존경하는 분이다.
앞으로도 계속 연주하고 싶다.
--어떤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나.
▲ 젊어서 잠깐 반짝했다가 사라지는 연주자가 되지 않으려 한다.
스승님도 항상 처음부터 천천히 가는 습관을 들이라고 했다.
배울 것을 천천히 다 배워가면서 수십 년 동안 음악을 할 건데 뭐하러 서둘러 가느냐는 말씀을 항상 새겨두고 있다.
무엇보다 내가 준비됐을 때 기회가 온다고 생각한다.
항상 더 좋은 연주자, 더 좋은 음악가로 살고 싶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