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주민 정체성 화려하게 재해석”…관람객 북적 > 지난 12일 영국에서 열린 ‘프리즈 런던 2022’의 스티븐프리드먼갤러리 부스는 미국 작가 제프리 깁슨의 솔로 전시로 화제를 모았다. 미국 인디언 토착 민족인 촉토(choctaw)-체로키(cherokee)의 유산을 물려받아 기하학적 추상과 구슬 등의 재료로 원주민의 정체성을 화려하게 재해석해 많은 관람객이 찾았다.  김보라 기자
< “원주민 정체성 화려하게 재해석”…관람객 북적 > 지난 12일 영국에서 열린 ‘프리즈 런던 2022’의 스티븐프리드먼갤러리 부스는 미국 작가 제프리 깁슨의 솔로 전시로 화제를 모았다. 미국 인디언 토착 민족인 촉토(choctaw)-체로키(cherokee)의 유산을 물려받아 기하학적 추상과 구슬 등의 재료로 원주민의 정체성을 화려하게 재해석해 많은 관람객이 찾았다. 김보라 기자
“이게 ‘내가 아는 프리즈 런던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년 전 첫 전시회부터 한 번도 안 빠지고 참석했는데, 이렇게 많은 관람객은 처음 보거든요.”

지난 12일 영국 런던 리젠트공원에서 열린 ‘제20회 프리즈 런던 VIP 오프닝’. 콧수염이 인상적인 중년의 컬렉터는 “입장하는 데만 1시간 넘게 걸렸다”며 이렇게 말했다. 행사장은 마스크를 벗어 던진 세계 각국의 미술 애호가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영국의 20년 만기 국채금리가 장중 연 5.1%를 찍으면서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날이었다. TV 속 뉴스 앵커는 파운드화 가치 하락과 가파른 인플레이션 등을 근거로 “영국 경제가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영국 전역을 휘감은 짙은 먹구름도 프리즈 런던만큼은 피해간 모양이었다. 올해 프리즈 런던에는 역대 가장 많은 46개국 280개 갤러리가 참여했다.

○첫날에 ‘완판’한 부스 속출

프랜시스 베이컨의 ‘인체습작(Study from the Human Body)’(1982).
프랜시스 베이컨의 ‘인체습작(Study from the Human Body)’(1982).
미국 뉴욕 가고시안갤러리는 VIP 오픈 첫날에 들고 온 그림을 다 팔았다. 가장 목 좋은 자리에 내건 영국 흑인 여성 화가 자데 파도유티미의 그림을 55만달러(약 7억9200만원)에 판 것으로 알려졌다. 페이스갤러리는 케네스 놀랜드의 ‘무제’를 45만달러에 팔았다. 리먼머핀갤러리는 첫날에 작품을 10개나 판매했다.

중소형 갤러리의 첫날 판매율도 70~80%에 달했다. 이란의 다스탄갤러리가 들고 온 레자 아라메시의 대리석 조각은 4만5000유로(약 6272만원)에 새 주인을 맞았다. 독일 베를린 소시에테갤러리의 다니엘 위첼하우스 대표는 “세계 경제가 망가지고 있지만 미술시장은 변한 게 없다”고 했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온 드니스 숄 울라이트아츠갤러리 대표는 “미술시장은 경기 침체의 여파가 가장 늦고, 약하게 닿는 분야”라고 말했다.

국내에선 국제갤러리와 갤러리현대, 조현화랑이 참여했다. 국제갤러리는 첫날 유영국의 1979년작 ‘워크(Work)’를 32만달러에, 이기봉의 신작 ‘듀얼 섀도(Dual Shadow)’를 7만5000~8만5000달러에 판매했다. 양혜규의 신작과 한지 콜라주 작품도 판매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붉은색 붓질이 인상적인 하종현의 대작 ‘접합(Conjunction) 22-28’은 51만5000달러라는 높은 가격에도 구입 문의가 쇄도했다. 박서보, 이배, 김종학 작가의 작품을 들고 참여한 조현화랑 정재호 디렉터는 “수집가들의 문의가 정말 많았다”며 “한국 화가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공룡 화석도 16억원에 팔려

고가 작품이 진열된 ‘프리즈 마스터스 섹션’에서 가장 주목받은 작품은 공룡 화석이었다. 1억5400만 년 전 쥐라기 시대의 캄프토사우루스 화석은 100만파운드(약 16억원)에 한 박물관이 사들였다. 런던의 조니 반 해프턴갤러리는 얀 브뤼헐 1세의 1616년 작품을 1000만달러(약 143억원)에 판매했다.

최고가 그림은 3000만달러(약 429억원)의 가격표를 단 프랜시스 베이컨의 ‘인체습작(Study from the Human Body)’(1982)이었다. 둘째 날까지 새 주인을 찾지 못했지만 구매 문의는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1500만달러에 나온 베이컨의 초기작 ‘소파에 앉아 있는 인물(Seated Figure on a Couch)’(1959)과 저울질하는 수집가가 많았다고 갤러리 측은 전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와 필립 구스턴의 작품도 명성에 걸맞게 각각 580만달러와 480만달러에 팔렸다.

‘역대급 흥행’에도 불구하고 이번 프리즈 런던은 ‘실력 있는 신진 작가 배출 통로’란 그동안의 명성에 못 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런던에 사는 개인 수집가 데이비드 하워드는 “인스타그램용 사진 찍기에 좋은 부스만 있다”며 “대다수 갤러리가 실험정신이 있는 작품이 아니라 잘 팔릴 만한 작품을 들고나왔다”고 지적했다.

프리즈 런던에 나온 작품을 쭉 훑어본 컬렉터들의 눈은 벌써 다음주에 열리는 ‘아트바젤 파리’로 향했다. 프리즈와 함께 세계 3대 아트페어로 꼽히는 아트바젤의 ‘파리 데뷔전’이다.

런던=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