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위태로운 절벽 위에서 돌을 부숴 가루를 만든 뒤 오로지 밧줄과 팔 힘에 의지해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전신 마비 상태의 아들. 남자는 오랜 시간 홀로 있었을 아들에게 햇볕을 쬐어주고, 몸을 씻겨주고,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 직접 빻은 가루를 정성스레 발라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끊긴 전기에 그는 다시 먼 길을 떠난다.
한참을 걸어 겨우 휴대폰을 빌린 그는 전력부에 전화해 전기가 끊겼음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한다.
남자의 집을 찾은 전력 담당자는 가만히 누워 눈만 껌뻑이는 어린아이를 마주한다.
그리고 고장 난 변압기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고치기 위해 휴가를 내고 사비까지 써가며 최선을 다한다.

대사나 배경음악이 풍부하진 않지만 바람과 냇물, 새와 풀벌레, 염소 등 영화의 배경이 되는 이란 데다쉬트의 소리가 그 여백을 훌륭하게 채워낸다.
영화는 언뜻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돕는 이야기로 보이지만 이를 넘어서 인간(人間)의 정의를 되새기게 만든다.
모든 등장인물이 장애물을 맞닥뜨리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난관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통해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문다.
또 한 명의 인간은 결코 완전하지 않으며 그렇기에 서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전화 한 통을 위해 집을 나선 남자는 길에서 만난 노인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고 기꺼이 걸어가 바늘에 실을 꿰어준다.
전력 담당자는 남자와 아들을 돕기 위해 애쓰고, 바쁜 와중에도 '데이트가 있으니 데려다 달라'는 한 맹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는다.
비장애인인 전력 담당자는 가장 많은 장애물에 부딪힌다.
그는 빨리 전기를 복구하고 싶은 마음에 전속력으로 달리다 차가 개울에 빠져 한 차례 위기를 겪는다.
겨우 도착한 목적지에서는 한 주민이 교체할 부속품을 가져가지 못하게 막고, 잔액 부족으로 가게에서 그냥 나서야 하기도, 차에 시동이 걸리지 않아 애를 먹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누군가가 나서 도움을 준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이들의 선의(善意)는 영화 제목처럼 하나의 바람이 되어 곳곳을 스치고 향기를 남긴다.

'아야즈의 통곡'에서 삶의 의욕을 잃은 노인을 통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냈던 그는 이번 작품에서 더불어 사는 삶이란 무엇인지 차분하고 담담하게 그려냈다.
영화제 측이 '바람의 향기'를 "인간의 선의가 아직 남아 있는지 의심스러운 세태 속에서 사람에 대한 믿음을 확인시켜주는 영화"라고 소개한 이유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