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날레에 출품된 영상 작품 등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들이 서울 종로구 삼청동 전시공간 3곳에서 30일 동시에 개막했다.
바라캇 컨템포러리는 1, 2관에서 2017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소개된 김성환 작가의 작품을 국내에서 처음 공개하는 등 대규모 개인전을 마련했다.
아트선재센터는 듀오로 활동하는 문경원·전준호 작가와 태국 출신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의 신작을 선보인다.

바라캇 컨템포러리는 상업 화랑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전시장 운영을 한 달 넘게 멈추고 전시 공간의 건축적 구조와 특징을 활용해 전시장 자체를 설치 작품으로 만들어 냈다.
김성환의 작업은 역사와 사회 구조, 교육 제도 등에 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며 영상과 퍼포먼스, 음악, 빛, 드로잉,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다.

과거 반공 교육의 주된 소재였던 이승복의 일화를 작가의 어린 조카가 구연동화로 전하는 내용이 중심이 된다.
재미교포 2세로 이승복 이야기를 전혀 모르는 어린 조카는 영어로 구연하다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문장은 한국어로 말한다.
이는 역사적 배경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타자를 통해 전달되는 역사가 어떻게 해석되는지에 관한 질문으로 읽힌다.

이 영상에도 작가의 조카가 등장한다.
조카는 수단 출신 소년과 함께 미국 사회의 인종 차별 문제를 은유적으로 풀어낸다.
아프리카계 소년은 아버지가 가르쳐준 차별을 받지 않기 위한 걸음걸이 등의 자세를 서술한다.
아시아계인 작가의 조카가 이 소년의 지시에 맞춰 자세를 취하는 장면도 연출한다.
이 작품 역시 1992년 일어난 흑인과 한인 간 충돌인 'LA 폭동' 등 특정 사회에 관한 역사적 배경을 알지 못하는 관객에게는 의미가 축소돼 전달될 수 있다.

그는 일례로 1942년 하와이에서 촬영된 사진에서 조선인들이 모두 흰 옷을 입은 장면을 본다면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역사적 배경이 없는 한국인이라면 하와이로 이주한 조선인들이 한 세대가 지나도록 의복 문화를 지켰다는 점에 뭉클할 수도 있겠지만,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과 연결한다면 일본인에 대한 공격을 피하고자 외모가 비슷한 조선인들이 수십 년 동안 입지 않았던 조선옷을 꺼냈을 거로 추측할 수도 있다.
두 작품 모두 역사의 지층을 강조한다.
이런 태도는 촬영 기법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강냉이 그리고 뇌 씻기'는 플라스틱판 여러 장을 겹쳐 거울처럼 만들어 그 앞에서 연기한 조카의 반사된 장면을 담고, 투명한 필름을 덮어 드로잉을 얹는다.
'굴레, 사랑 전'은 한 건물의 여러 층에서 촬영한 장면들을 교차 편집하면서 층위를 드러낸다.

여러 종류의 종이를 오리고 겹치며 연필과 아크릴 물감, 페인트, 알루미늄 테이프, 포장용 테이프 등을 사용해 평면 작품으로 보이지만, 심연의 공간을 드러내는 듯하다.
김성환은 지난해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개인전을 열고 존 시몬 구겐하임 기념재단의 펠로우십을 수상하는 등 세계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작가로 다음 달 부산비엔날레에도 참여한다.

문경원·전준호 작가의 전시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28개국 예술 기관들이 발족한 '월드웨더네트워크(WWN)' 프로젝트의 하나로 진행된다.
이들은 인간이 아닌 주체들의 관점으로 변화하는 지구의 모습을 관객 몰입형 설치로 제시한다.
컴퓨터 그래픽과 실사로 구성된 파노라마 영상과 현대차의 로봇, 바위 등으로 구성된 '불 피우기'라는 작품으로 사실적 기록과 인공지능(AI)을 활용한 허구가 뒤섞였다.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는 지난해 광주비엔날레에 공개한 '죽음을 위한 노래'와 함께 후속 작품인 '삶을 위한 노래'를 선보인다.

특히 작가는 극장의 공간을 뒤틀어 새로운 경험을 제시한다.
무대에 객석을 마련하고 영상 속 오브제를 설치했으며 객석에 스크린을 세워 관객과 스토리의 위치를 바꿔 놨다.
각각 약 30분, 20분 분량인 두 영상 작품을 이어서 상영해 죽음과 삶에 관한 단편 예술영화를 보는 듯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