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는 그 구성원 모두가 해당 기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구조적·정책적 지원으로 뒷받침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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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원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모든 사람은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성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권리와 자원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최근 출간된 '공정 이후의 세계'(창비)를 통해서다.
책은 불평등이 고조하는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여성할당제, '이대남' 논란 등 익숙한 사례를 통해 한국 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공정 담론'을 다각도로 분석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서 얘기되는 '공정'은 내가 투입한 땀에 비례해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등가교환의 원칙'에 기반한다.
또한 준거집단에 비추어봤을 때 비례가 공정해야 한다는 비례의 원칙에 토대를 둔다.
이런 공정의 준칙에 따라 입사 성적이 좋다면 초봉도 그에 비례해서 다른 사람보다 더 높아야 하고, 명문 대학을 나오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사회적으로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지고 있다.
나아가 일각에선 공정을 주장하며 '사법 고시 부활', '정시 확대' 등을 촉구하기도 한다.
1등부터 100등까지 시험점수로 줄을 세우고, 그에 따라 대우를 받는 게 공정하다는 얘기다.
이른바 능력에 따른 공정인 '능력주의'다.

사회적으로 공고한 구조적 불평등 문제를 전혀 건드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2021년 영재학교 최종 합격자 상황은 이런 능력주의의 허울을 여실히 보여준다.
합격자 명단에 따르면 서울과학고 정원 120명 가운데 66명이 대치동 A학원 출신이었다.
경기과학고(정원 120명)는 61명이, 한국과학영재학교(정원 120명)는 64명이 각각 A학원 출신이었다.
모두 절반 넘는 합격자가 A학원에서 배출된 것이다.
대치동 A학원으로 상징되는 영재학교 사교육비는 수학 올림피아드 준비까지 병행할 경우 1억 원가량이 든다고 한다.
누구나 공정하게 A학원에서 공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이다.
저자는 이런 교육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와 사회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수도권 지역 학교와 공교육에 대한 물적 투자를 과감하게 늘리고, 대도시에 거주하지 않더라도 풍요로운 문화적 기회에 접근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설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교육적 가치를 보장하는 여러 행사들을 지역 사회에 유치할 수 있도록 재정적·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와 함께 저자는 여전히 차별적인 남녀의 임금구조, 소수자에 대한 배려 부족, 무한경쟁을 촉발하는 자유주의의 한계, 갑질이 팽배한 직장문화를 비판하면서 "지금처럼 단편적이고 획일적인 기준으로 사람들의 지위가 매겨지고 인정이 배분되는 사회가 아닌, 다원적 가치와 기회를 추구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더이상 배제와 차별화의 에너지로 스스로를 지탱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포용과 돌봄과 상호의존으로 우리의 삶과 세계를 되살려야 한다는 강한 신념과 의지가 필요한 때다.
"
264쪽. 1만7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