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느낌표가 아니라 물음표였죠."
영화 '헤어질 결심'의 정서경 작가는 완성된 작품을 처음 봤을 때 느낌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는 박찬욱 감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창작 파트너다.
20년간 함께해 온 두 사람은 '친절한 금자씨'(2005),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박쥐'(2009), '아가씨'(2016) 등을 공동집필했다.
1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 작가는 "작품이 제가 쓴 시나리오에서 참 멀리 떨어져 있어 좋고 아름다웠다.
그래서 이 영화를 제일 좋아하게 된 것 같다"며 '헤어질 결심'을 박 감독의 최고작으로 꼽았다.
"자기가 쓴 작품을 바라볼 때 여러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데 '헤어질 결심'은 그렇지 않았어요.
이렇게 밖으로 떨어져 나와서 별개 영화로 감상한 건 처음 같아요.
저는 그냥 한 남자가 바닷가에서 한 여자를 찾는 장면을 쓴 것뿐인데 이렇게 만들어질 지 몰랐죠. 제가 영화 속에 들어가 그 감정을 함께 느낄 지, 여자가 불쌍해서 눈물을 글썽일 지도 몰랐어요.
"

수사극과 로맨스극의 성격을 동시에 가진 이 작품은 박찬욱 감독의 전작들과 확연히 다른 색채를 띤다.
잔혹한 폭력 장면도, 격정적인 베드신도 없다.
"여러 고려 끝에 두 사람의 육체적 교류에 관한 부분을 다 뺐어요.
키스신 하나만 남겼죠. 처음부터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니에요.
'핸드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라는 대사가 사랑한다는 의미가 되는 사랑은 어떤 모습일지 생각하면서 불필요한 것을 제거한 것이죠."
정 작가는 "감독님도 저도 로맨틱한 것을 잘 못 견디는데 이번에 멜로가 좋다는 걸 깨달았다"며 웃었다.
"감독님이 영화를 보시고 저한테 '역시 영화는 멜로야' 하셨어요.
정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되더라고요.
마지막에 느껴지는 감정의 질이 달랐어요.
멜로라는 게 정말 인간의 본질과 닿아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죠."

정 작가는 그 장면을 보며 오르페우스 신화가 떠올랐다고 했다.
"저도 감독님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오르페우스가 잃어버린 아내를 찾아 지옥과 이승 사이를 떠도는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서 영원히 헤매야 하는 남자. 영화에서는 분명 서래를 찾는 해준의 모습이었지만 왠지 저 남자는 오래전부터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헤어질 결심'은 정 작가와 박 감독이 처음으로 특정 배우를 주인공으로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쓴 작품이다.
정 작가는 탕웨이를 섭외하기 위해 서래를 중국인 여성으로 설정하고 각본을 집필했다.
"감독님이 멜로 영화를 하자는데 제가 너무 자신이 없는 거예요.
저는 탕웨이를 사랑하니까 탕웨이라면 쉽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 같아요.
탕웨이는 시·공간과 관계없이 항상 자기 자신인 사람이에요.
작가로서 보기에는 정말 아름답게, 가장 짧고 핵심적으로 말을 하는 사람이고요.
"

"바다 위에는 파도가 치지만 그 밑은 정말 잔잔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박해일 씨는 심해 같은 배우예요.
무인도에 갇혀서 한 배우하고만 작업해야 한다면 박해일을 택할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로 모든 것이 좋았어요.
"
'헤어질 결심'은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으며 개봉 전부터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국내외 언론과 영화 마니아층 사이에서 호평이 이어진 것과 달리 개봉 2주 만에 누적 관객수 100만 명을 넘는 저조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
정 작가는 "생각해보면 그 기대감만 없었다면 모든 게 완벽했던 것 같다"면서 "100만 명의 관객도 너무 소중하고, 여러 번 영화를 보며 깊이 느껴주는 관객분께도 감사하다"고 했다.
"감독님도 '만약 (성적이) 이렇게 될 걸 알았더라도 똑같이 시나리오를 쓰고 똑같이 찍었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사실은 본인이 선택한 결과가 아닐까 싶어요.
(웃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