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소설 낸 시인 박연준 "마음속 '유년 이야기' 꺼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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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여름과 루비' 출간…"삶의 '찢어진 페이지' 복원"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 늘 천착한 주제가 유년이었어요.
그 무렵 저에게 인생이란 게 쉽지 않고 풀 게 많은 숙제와 같았어요.
마음속 유년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놓으면 좀 가벼워지지 않을까 생각했죠."
시인이자 에세이스트로 종횡무진 활동하며 보폭을 넓혀온 박연준(42)이 이번엔 소설가로 변신했다.
단편이나 중편이 아닌 장편으로, 그의 유년 시절을 주인공 '여름'을 통해 일부 투영한 자전적 소설이자 성장 소설이다.
박연준은 지난 13일 소설 '여름과 루비' 출간을 맞아 서울 마포구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가진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너무 홀가분하다"고 웃었다.
"한 시절을 끝낸 느낌"이라고 했고, "내게서 탈락했으면 하는 어떤 시절, 뜨겁고 굵은 첫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나니 가벼워진 것 같다"라고도 했다.
대학 때인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에 시 '얼음을 주세요'로 등단했지만, 사실 그는 시보다 소설을 집중적으로 썼다.
시보다 소설에 더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던 시기로, 인간관계를 주제로 습작을 하곤 했다.
시로 등단하면서 소설과는 거리를 두게 됐지만 오랜만에 다시 옛사랑과 마주했다.
박연준은 원래 인생을 좀 아는 나이인 예순에 소설을 쓰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약 20년 앞당겨졌다.
그의 시 속에서 소설의 서사성을 발견한 은행나무의 백다흠 편집장이 2018년 가을께 우스갯소리로 "소설을 써야 한다"고 한 게 시작이었다.
시와 산문 등 다른 작품 활동 계획이 있었던 그는 처음에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은행나무에서 격월로 발간하는 문학잡지 '악스트' 연재로 시작하자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고 1년 반 만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2020년 여름부터 1년간 6회에 걸쳐 연재했고 반응도 좋았다.
이후 일부 내용을 수정하고 탈고해 단행본으로 펴냈다.
박연준은 "시는 찰나를 잡는 거라 공중에 나부끼는 어떤 현상을 언어로 풀어놓는 거고, 산문은 취사선택한 이야기를 자세히 말하는 것"이라며 "소설의 경우 작가는 이야기를 재구성해 처음부터 다시 살아볼 기회를 얻는다.
허구이지만 진실 한 가닥을 만질 수 있다는 게 소설의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벽지 느낌의 흰 바탕에 검은색 이파리가 들어간 책을 들어 보이며 "모든 식물에서 이파리를 가장 좋아한다"며 흡족해했다.
"꽃이 지고 어린잎이 나는 4월의 이파리를 가장 좋아한다"는 그의 말과 유년이란 단어가 겹쳐졌다.
나뭇가지에 달린 잎이 아닌 죽은 이파리는 꺼진 생명 같지만, 자세히 보면 잎맥 속엔 여전히 빛이 보인다.
언뜻 생각하면 이파리처럼 유년도 지나간 시간일 수 있지만, 밤하늘의 별빛처럼 늘 빛나는 시절로 남을 수 있는 것이다.
소설은 여름과 단짝 '루비'를 통해 무수한 실패에 관해 이야기한다.
아무도 자신을 돌봐주지 않아 고장이 난 신호등 같다고 생각하는 여름, 새엄마의 존재에 못마땅해하는 여름, 열세 살에 한 초경에서 실패를 떠올리는 여름, 루비와의 사랑과 이별을 통해 마지막에는 혼자 언덕을 내려오며 성숙해가는 여름 등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구 사용법', 할머니 이야기가 분량이 가장 많다.
여름이에게 엄마나 마찬가지였던 할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미국으로 떠나 20년 뒤 돌아온다.
여름이가 당시 할머니한테 하고 싶었던 말은 '배신자',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의자 밑으로 숨는 것이었다.
여름이는 할머니가 앉았던 의자를 떠올리며 "슬픔이 굳어 의자가 된다"고 되뇐다.
박연준은 "누구나 유년을 겪었기 때문에 편차는 있겠지만 독자들도 여름이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다 읽고 나서 '맑은 슬픔'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람을 힘들게 하는 슬픔이 아니라 머물게 하고 싶어지는 슬픔"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소설에 대해 "내 삶의 '찢어진 페이지'를 복원하는 것이었고 용기가 필요했다"고 고백했다.
인생을 책 한 권에 비유할 때 작가라고 해도 쓰지 못하는 페이지가 있는데, 그 페이지를 완전히 복원할 수는 없더라도 조금은 들여다보려고 시도한 것이라고 했다.
"다음 소설은 여든에 써볼까 싶은데 빨라질 수도 있고요.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죽기 전에 연애 소설을 쓰면 좋겠어요.
시는 연애 시가 제일 좋고, 소설도 제대로 쓰면 연애 소설이 좋죠. 연애의 성공과 실패에 한정하는 건 아니고, 연애를 제대로 한번 들여다보면 큰 공부가 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
/연합뉴스

그 무렵 저에게 인생이란 게 쉽지 않고 풀 게 많은 숙제와 같았어요.
마음속 유년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놓으면 좀 가벼워지지 않을까 생각했죠."
시인이자 에세이스트로 종횡무진 활동하며 보폭을 넓혀온 박연준(42)이 이번엔 소설가로 변신했다.
단편이나 중편이 아닌 장편으로, 그의 유년 시절을 주인공 '여름'을 통해 일부 투영한 자전적 소설이자 성장 소설이다.
박연준은 지난 13일 소설 '여름과 루비' 출간을 맞아 서울 마포구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가진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너무 홀가분하다"고 웃었다.
"한 시절을 끝낸 느낌"이라고 했고, "내게서 탈락했으면 하는 어떤 시절, 뜨겁고 굵은 첫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나니 가벼워진 것 같다"라고도 했다.
대학 때인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에 시 '얼음을 주세요'로 등단했지만, 사실 그는 시보다 소설을 집중적으로 썼다.
시보다 소설에 더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던 시기로, 인간관계를 주제로 습작을 하곤 했다.
시로 등단하면서 소설과는 거리를 두게 됐지만 오랜만에 다시 옛사랑과 마주했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약 20년 앞당겨졌다.
그의 시 속에서 소설의 서사성을 발견한 은행나무의 백다흠 편집장이 2018년 가을께 우스갯소리로 "소설을 써야 한다"고 한 게 시작이었다.
시와 산문 등 다른 작품 활동 계획이 있었던 그는 처음에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은행나무에서 격월로 발간하는 문학잡지 '악스트' 연재로 시작하자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고 1년 반 만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2020년 여름부터 1년간 6회에 걸쳐 연재했고 반응도 좋았다.
이후 일부 내용을 수정하고 탈고해 단행본으로 펴냈다.
박연준은 "시는 찰나를 잡는 거라 공중에 나부끼는 어떤 현상을 언어로 풀어놓는 거고, 산문은 취사선택한 이야기를 자세히 말하는 것"이라며 "소설의 경우 작가는 이야기를 재구성해 처음부터 다시 살아볼 기회를 얻는다.
허구이지만 진실 한 가닥을 만질 수 있다는 게 소설의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꽃이 지고 어린잎이 나는 4월의 이파리를 가장 좋아한다"는 그의 말과 유년이란 단어가 겹쳐졌다.
나뭇가지에 달린 잎이 아닌 죽은 이파리는 꺼진 생명 같지만, 자세히 보면 잎맥 속엔 여전히 빛이 보인다.
언뜻 생각하면 이파리처럼 유년도 지나간 시간일 수 있지만, 밤하늘의 별빛처럼 늘 빛나는 시절로 남을 수 있는 것이다.
소설은 여름과 단짝 '루비'를 통해 무수한 실패에 관해 이야기한다.
아무도 자신을 돌봐주지 않아 고장이 난 신호등 같다고 생각하는 여름, 새엄마의 존재에 못마땅해하는 여름, 열세 살에 한 초경에서 실패를 떠올리는 여름, 루비와의 사랑과 이별을 통해 마지막에는 혼자 언덕을 내려오며 성숙해가는 여름 등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구 사용법', 할머니 이야기가 분량이 가장 많다.
여름이에게 엄마나 마찬가지였던 할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미국으로 떠나 20년 뒤 돌아온다.
여름이가 당시 할머니한테 하고 싶었던 말은 '배신자',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의자 밑으로 숨는 것이었다.
여름이는 할머니가 앉았던 의자를 떠올리며 "슬픔이 굳어 의자가 된다"고 되뇐다.

사람을 힘들게 하는 슬픔이 아니라 머물게 하고 싶어지는 슬픔"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소설에 대해 "내 삶의 '찢어진 페이지'를 복원하는 것이었고 용기가 필요했다"고 고백했다.
인생을 책 한 권에 비유할 때 작가라고 해도 쓰지 못하는 페이지가 있는데, 그 페이지를 완전히 복원할 수는 없더라도 조금은 들여다보려고 시도한 것이라고 했다.
"다음 소설은 여든에 써볼까 싶은데 빨라질 수도 있고요.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죽기 전에 연애 소설을 쓰면 좋겠어요.
시는 연애 시가 제일 좋고, 소설도 제대로 쓰면 연애 소설이 좋죠. 연애의 성공과 실패에 한정하는 건 아니고, 연애를 제대로 한번 들여다보면 큰 공부가 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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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