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차 언급한 바와 같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비해 매우 주의가 소홀한 것이 현재의 임대차계약관행이다. 다음의 사례 역시 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사례이지만, 의뢰인의 비밀보호를 위해서 사실관계를 새로이 구성한다).
필자의 의뢰인은 2005년에 서울 신촌 소재 다세대 주택 101호를 임차했다고 한다. 그 의뢰인은 통상적으로 하는 것처럼 중개업자의 안내로 집을 구경한 다음, 부동산등기부등본을 확인하여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계약금, 잔금을 지급하고 이사를 갔고, 이사하는 당일에 전입신고, 확정일자도 했다.
그런데, 이사한 지 보름 정도 이후에 느닷없이 임차목적물인 101호에 甲이라는 사람의 이름으로 임차권등기가 이루어지는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임차권등기라는 것은 임차인이 하는 것인데, 그 의뢰인은 분명 임차인이 없는 빈집에 세를 들어왔고, 그것도 새로 이사온 이후에 임차권등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확인결과 황당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사건개요
사건 개요는 다음과 같다.
이 의뢰인이 이 집에 이사오기 전에 이 집은 甲이라는 사람이 임차인으로 있었는데, 임대인으로부터 보증금을 자진해서 돌려받지 못하게 된 甲은, 급히 집을 옮겨야 하는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일단 대부분의 짐은 다른 곳으로 옮기고, 이부자리 등 간단한 짐 몇가지만 두고서, 주민등록은 말소하지 않고 임차권등기를 신청하면서 문을 잠궈둔 채 이사를 가게 되었다. 당시 甲의 생각에는, 임차권등기가 등기부상에 오르기 전에 주민등록을 이전해버리면 임차인으로서의 대항력을 상실하기 때문에 임차권등기 등재 이전에 주민등록만 그대로 두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상태에서 다른 임차인을 들이는데 문제가 있을 것을 우려한 임대인이 갑이 남겨둔 일부의 짐을 임시로 다른 곳으로 옮기고, 새로운 임차인인 의뢰인에게는 이러한 상황을 전혀 알려주지 않은 채 임대를 해 버리고, 더구나 받은 임대차보증금마저 전 임차인에게 지급하지 않고 사용해버린데서 발생했다. 그 후 임대인은 법원에서 사기죄로 징역형을 선고받게 되었다. 임대차목적물 내에서 기존 임차인 소유의 짐 일부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어, 새로운 임차인으로 하여금 적법하게 사용수익하게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을 새로운 임차인에게 전혀 고지하지 않는 방법으로 새로운 임차인으로부터 보증금을 편취하였다는 내용으로 사기죄의 유죄가 선고된 것이다.
결국, 임대인이 실형까지 선고되면서도 기존 임차인의 보증금을 해결하지 못한 결과, 향후 분쟁은 기존 임차인인 甲과 현 임차인인 의뢰인간의 다툼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 재판에서의 쟁점은, 임차권등기가 등기부상에 등재될 때까지 기존 임차인이 계속 임대차목적물을 점유하고 있었는지 여부에 있다. “임차권등기”라는 제도는 이 사안과 같이 임대차계약이 종료되어 임차인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하는데도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할 경우, 만약 그대로 이사를 가버릴 경우 임차인으로서의 대항력을 상실하게 되는 위험을 구제하기 위해 도입된 것인데, 주택임대차보호법상 대항력은 주민등록(전입신고)과 임대차목적물의 인도(이사)를 동시에 갖추어야 성립되고, 또 대항력이 그대로 존속되기 위해서는 주민등록과 인도라는 대항요건이 그대로 유지되어야 할 필요도 있어, 기존에 존재하던 대항력을 중단없이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임차권등기가 등재되기 이전에 주민등록은 물론 “점유”라고 하는 요건을 갖추어야만 한다는 점에서, 임차권등기되기 이전에 기존 임차인인 甲이 점유를 계속하고 있었는지가 쟁점이 될 수 있다.
점유를 하고 있느냐는 법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단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법원은 “점유”라고 함은 물건이 사회통념상 그 사람의 사실적 지배에 속한다고 보여지는 객관적 관계에 있는 것을 말하고 사실상의 지배가 있다고 하기 위하여는 반드시 물건을 물리적, 현실적으로 지배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물건과 사람과의 시간적, 공간적 관계와 본권관계, 타인지배의 배제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사회관념에 따라 합목적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법원 1996. 8. 23. 선고 95다8713 판결), 기존 임차인이 평소 보관하던 열쇄를 임대인에게 돌려주지 않고, 일부이긴 하지만 짐을 두고 이사를 갔다면 이사 이후에도 계속 임대차목적물을 점유했다고 볼 수 있는 여지도 충분히 있어, 논란이 될 수 밖에 없다.
### 어떤 대비책이 있나?
결국, 임대인이 이런 황당한 일을 벌이는 것을 예상한다면, 임대차보증금을 받지 못하고 집을 비우게 되는 기존임차인이나 새로운 임차인 모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할 수 있다.
기존의 임차인 입장에서는, 가급적 임차권등기가 부동산등기부에 등재되기 이전에는 주민등록이전은 물론, 짐을 빼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앞서 본 사례에서와 같이, 임차권등기 이전에 집을 비워 다른 곳으로 이사하게 되면, 새로운 임차인으로 하여금 아무런 문제가 없는 정상적인 물건인 것으로 오해될 수 있는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임차인 입장에서는, 더욱 어려워진다. 기존의 계약관행으로만으로는 임대인의 고의적인 사기행위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확실한 확인을 위해서는 임대인에게 세대별 주민등록열람을 요구하는 것이 필요한데, 지금과 같은 허술한 임대차거래관행상 이와 같은 임차인의 요구가 임대인에 의해 수용될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금융기관에서 대출할 때 반드시 세대별주민등록열람을 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임차인 역시 스스로의 권리보호를 위해 계약 이전에 미리 세대별주민등록열람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확인은 개인정보에 관한 사항이라 임대인 협조없이 임차인 단독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임대인의 양해를 얻어야 하는데, 설득해서 요구를 관철시킬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지금의 거래관행상 임대인에게 이런 부탁을 하게 되면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중개업자에게만 확인을 맡겨둘 수도 없다. 지금의 업계 업무관행으로 볼 때, 중개업자에게 세대별주민등록확인을 요구하면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이라고 핀잔을 주면서 협조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주민등록확인을 하지 않아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현행 판례상으로 볼 때 중개업자에게 통상적인 주의의무가 부족했다고 판단하기가 쉽지 않아 중개업자에게 법적인 책임을 묻기가 곤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확인하지 않은데 대한 불이익은 임차인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위험발생가능성을 알고서도 허술한 거래관행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지금의 상황, 필자로서도 답답한 마음이 든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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