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시작한지 10년이 넘어가면서 많은 부동산 법률문제를 다루고있지만, 부동산거래에서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되풀이되고 있는 문제 중의 하나가 바로, 외상으로 건축하고 대신 공사대금을 건축된 건물을 분양하거나 임대해서 시공업자가 가져가는 식의 계약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쟁들이다.
토지를 가진 사람이 토지상에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시공업자와 건축도급계약을 체결하고 공정율에 따라 약정한 공사대금을 순차로 지급해나가는 것이 건축의뢰의 통상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토지주가 건축을 할 수 있는 자금여력이 넉넉지 않을 경우, 공사진행은 일단 외상으로 한 후 건물이 완공되어서 다른 사람에게 건물을 분양하거나 임대차해서 받을 수 있는 돈으로 공사대금을 회수하기로 토지주와 시공업자간에 계약이 체결되는 경우가 적지않다. 자금여력이 부족한 토지주 입장에서는 자금투입을 하지 않고서도 토지상에 건축을 할 수 있다는 점, 공사대금을 받을 시공업자의 주도로 분양과 임대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다는 점 등에서 장점이 있고, 반면 시공업자 입장에서도 자금여력이 넉넉지않은 토지주를 상대로 공사를 수주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방법의 건축도급계약이 드물지않은 실정이다.
그렇지만, 이런 식의 계약을 너무 쉽게만 생각하다보니 이 과정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법률문제를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문제가 바로, 공사대금회수의 방편으로 시공업자에게 인정한 분양 및 임대의 권한을 시공업자가 남용하는 것이다. 위임받은 권한 이상으로 시공업자가 임의로 분양 및 임대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당초 예상했던대로 공사가 진행되지 못할 경우에 자주 발생한다. 건축도급계약을 체결과정에서, 어느정도 금액의 공사대금이 소요되어서 공사를 완공한 이후에 분양 및 임대를 통해 어느 정도의 금액을 회수할 수 있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되지만, 막상 공사진행 과정에서는 예상했던 금액보다 공사대금이 더 소요되거나 아니면 분양이나 임대가 제대로 되지 않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그 결과, 토지주와 시공업자간에 분쟁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 다툼의 와중에 분양이나 임대권한에 관한 문제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런 현상은 외상으로 공사를 맡게 된 시공업자 역시 자기자본없이 공사의 공정별로 외상으로 하도급공사를 시키는 경우에 더 빈번하다. 토지주와의 원래 약속은 공사를 완성한 후에 다른사람에게 분양하거나 임대를 통해 공사대금을 회수하는 것이었지만, 시공업자 역시 하도급업자들에게 외상으로 공사를 시키다보니 공사가 완성되기 이전에 하도급업자에 대한 외상 공사대금 담보조로 건물분양 내지 임대계약서를 이들에게 작성해주는 경우가 적지않다. 이 경우에는 결국, 공사가 완성되지 못한 상태이다보니 완성된 이후에 받을 수 있는 값어치 이하로 계약서가 작성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토지주에게 돌아가는 수익이 점점 적어질 수 밖에 없고, 심지어는 토지와 완공된 건물 전부를 처분하더라도 손해보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이는, 공사 후에 얻을 수 있는 수입과 공사과정에서 들어갈 비용에 대한 검토가 부족했거나 당초 계획과 너무나 다르게 공사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분쟁은 토지주와 시공업자에 그치지 않고, 시공업자로부터 분양,임대받은 사람들이 개입되면서 해결이 더 복잡해 진다. 어쨌건 이들은 토지주로부터 분양이나 임대를 위임받은 시공업자와 계약을 체결했다는 점에서 권리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분양 및 임대위임 내용을 명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 즉, 시공업자가 다른 사람에게 분양 내지 임대를 하기 위해서는 토지(건물)주의 위임권한이 있다는 점에 관해서 확인해 달라는 요구를 받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때 확인용으로 제시될 수 있는 도급계약서, 위임장 등에 정확한 위임범위를 기재할 필요가 있다. 예를들어, 건물을 완성한 이후에만 시공업자가 토지주(건물주)를 대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거나, 일정한 호수에 대해서는 위임하지 않았다거나, 분양 내지 임대에 관하여 시공업자가 토지(건물)주를 대리할 권한은 원칙적으로 있지만, 시공업자의 분양 내지 임대가 토지(건물)주에 대해 유효하기 위해서는 토지(건물)주의 사전확인과 승락을 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문구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위임권한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서 이러한 문구와 함께 ‘이를 위반한 시공업자의 분양 내지 임대행위는 무효이다’라는 취지의 분명한 문구를 함께 병기해 둘 필요도 있다.
아울러, 동일한 맥락에서 무조건적인 위임의 용도로 악용될 수 있는 백지나 내용이 허술한 서류에 인장을 날인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비록 다른 용도로 도장을 찍어준 것이라고 하더라도 백지나 내용이 채워지지 않는 서류가 전혀 예상치않은 내용으로 채워지게 된다면 법적으로 낭패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서류내용이 다른 사람에 의해 위조된 것이라는 입증책임은 소송법상 이를 주장하는 사람에게 있다는 점에서, 토지(건물)주가 만약 이를 입증하지 못하면 서류상에 기재된 내용을 그대로 책임질 수 밖에 없는 불리한 처지에 놓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백지에 도장날인을 해서는 않되는 것은 물론, 비록 일정한 내용이 기재된 문서에 도장을 날인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추후에 예상치않은 추가내용이 삽입될 수 있는 공간이 없게끔 문서를 만든 다음에 도장을 날인하는 용의주도함이 필요할 수 있다.
만약, 위임장이나 계약서 내용에 위임제한에 관해 명백하게 규정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오해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면, 법적으로는 “표현대리”라는 이론으로 위임내용을 믿고 분양이나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사람을 토지(건물)주가 책임져야 할 처지에 놓일 수 있게 된다.
훗날을 생각하지 못하고 당장 좋으면 그만이다라는 행동을 빗대는 것으로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속담이 있는데, 아무런 법률적인 대비없이 분양이나 임대권한을 시공업자에게 주면서 외상공사를 시키는 지금의 관행에 이 속담이 적절한 비유가 될 수 있다고 본다.-이상-
■ 참고법령
민법 제125조 (대리권수여의 표시에 의한 표현대리) 제삼자에 대하여 타인에게 대리권을 수여함을 표시한 자는 그 대리권의 범위내에서 행한 그 타인과 그 제삼자간의 법률행위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그러나 제삼자가 대리권없음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제126조 (권한을 넘은 표현대리) 대리인이 그 권한외의 법률행위를 한 경우에 제삼자가 그 권한이 있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본인은 그 행위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제129조 (대리권소멸후의 표현대리) 대리권의 소멸은 선의의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그러나 제삼자가 과실로 인하여 그 사실을 알지 못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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