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파괴되는 아픔에 공감했는지, 진심이 잘 전달될지 두려워"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는 동명의 일본 희곡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일본에서 있었던 이지메(집단 따돌림) 사건을 모티브로 한 희곡은 배경을 한국으로 옮기며 국내에서 발생한 학교 폭력 사건들을 담아냈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 학생 부모들을 중심에 세운 것은 원작과 같다.
명문 국제중학교에 사회적 배려 대상자로 입학한 남학생 건우가 자신에게 폭력을 가한 동급생 4명의 이름이 적힌 편지를 남긴 채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된다.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들의 부모들이 모인다.
변호사, 병원장, 전 경찰청장, 국제중 교사 등 권력과 재력을 가진 이들은 자신의 아이를 위해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고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든다.
5년 만에 영화를 선보이게 된 김지훈 감독은 20일 화상 인터뷰에서 "어렵고 무겁고 두려운 이야기를 연출하게 됐고,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영화의) 생명을 살려보려고 많은 시간을 보냈다"며 "두려운 마음은 여전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 감독은 "나 역시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로서 '우리 아이가 피해자가 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있었는데 원작을 접하고 나서는 '우리 아이가 가해자가 되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학교 폭력을 접할 때 예전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따로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 영화를 찍으면서 그렇지 않다는 걸 확신했죠. 그게 이 영화의 출발이자 마무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
김경미 작가는 원작을 각색하며 한국에서 일어났던 학교 폭력 사건들을 취재했고, 김 감독은 그 내용을 보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이게 진짜야?' 할 정도로 끔찍한 일이 많이 벌어져서 이걸 영화로 만드는 게 과연 놀라운 일인가 싶을 정도로 현실이 더 영화 같아 놀랐던 기억이 난다"며 "그런 일들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 더 무서운 일"이라고 말했다.
가장 충격적이고 잊히지 않았던 장면은 영화에도 녹여냈다.
"아이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장면이었어요.
옥상에 올라가기 전에 축구공을 굴리기도 하고요.
마지막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에 망설이고 두려워하는 장면이 CCTV에 고스란히 남은 거죠. 세상의 모든 부모가 그 아이에게 미안함을 느꼈을 테고, 왜 그렇게 만들었을까 반성하게 했죠. 저에게도 여전히 죄스럽게 남아있는 그 장면이 저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 같아요.
"
그는 "아이의 영혼이 파괴되는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관객들이 건우의 아픔에 공감하고 피해자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영혼이 파괴되는 아픔과 상처에 진심으로 공감했는가, 그것을 영화적으로 잘 표현했는가, 그 진심이 관객들에게 온전히 전해질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은 여전하다고 했다.
"물리적인 폭력은 여러 가지 도움이나 노력을 통해 치유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영혼이 파괴되는 폭력은 치유되지 않죠. 아이들이 동급생에게 폭력을 가하는 장면을 찍는 건 저도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폭력의 자극성이나 끔찍함보다 그로 인해 아이가 어떻게 무너지고 회복되지 않는 절망의 끝에 다다르는지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 2017년 촬영을 마친 영화는 출연 배우가 '미투'(성폭력 고발 운동) 가해자로 지목되고 배급사가 변경되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5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
김 감독은 "세월의 때가 묻지 않았을까, 낡은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렇지 않아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세상일은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거나 부패하는데, 이 이야기의 진심이 부패하지 않고 발효됐다고 생각한다"며 "건우의 아픔을 온전히 전달하려는 영화의 핵심 메시지가 살아 숨 쉬었기 때문"이라고 자평했다.
영화는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 지침이 모두 해제된 이후인 27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김 감독은 "영화인으로서 어둠 속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스크린, 많은 꿈이 이뤄지는 공간이 너무나 그리웠다"며 "그 공간에 다시 관객분들이 와서 희망과 꿈을 찾고 새로운 인생을 경험하는 시간이 빨리 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