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 쓴 책의 제목이다. “역대 대통령은 하나같이 탐욕 때문에 쓰러졌다”고 했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도) 어차피 양당 후보 가운데 한 명이 당선될 텐데 누가 돼도 나라 앞날이 암울하다”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탐욕 없는 대통령이 들어서면 내일의 세상은 오늘과 다를 것인가.

물음을 바꿔보자. 왜 정부는 실패하는가. 오로지 대통령 때문인가. 이런 질문도 가능하다. 자칭 보수든 진보든 역대 대통령마다 꼭 하겠다고 약속한 규제개혁은 왜 실패로 돌아갔는가. 전부 대통령 탓인가. 대통령이 모두 실패한 이유가 탐욕을 부르는 정치권력 구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정치가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권력은 관료집단에 위임돼 그들의 수중으로 들어간다. 관료사회가 변하지 않는 한 본질적으로 ‘정부에서 민간으로의 권력 이동’을 의미하는 규제개혁이 될 턱이 없다.

한국행정학회·한국정책학회 주최 ‘차기 정부 운영 대토론회’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우스갯소리 같지만 대한민국에 당이 세 개가 있다. 여당·야당·관당(官黨). 오죽하면 ‘관피아’ ‘모피아’ 이런 이야기가 있겠나”라고 했다. 여당·야당이 국민 선택으로 바뀌어도 관료사회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그래서 어떻게 고치겠다는 것인지 청사진이 없다. 개인기로 돌파할 수 있다지만 시스템 개혁 아니면 그때뿐이다. “임명권력은 선출권력을 따르라”고 윽박지른다고 될 일도 아니다. 기획재정부를 해체해도 관료는 남는다. 탄소중립·에너지전환을 위해 기후에너지부를 만든다지만 관료가 헤쳐모일 뿐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경제가 정부 중심에서 민간 중심으로 변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관료지배 시스템이다. ‘청와대 정부’가 아니라 ‘책임장관제’로 가겠다지만, 장관은 ‘객(客)’일 뿐 자신들이 주인이라는 게 관료사회의 뿌리 깊은 인식이다. 공공부문의 효율성을 높이고 맞춤형 정책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디지털 플랫폼 정부 공약도, 메타버스 가상부처를 만들겠다는 공약도 다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구시대 마차에 인공지능(AI) 내비게이션을 달겠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책임총리, 책임장관제를 보장하겠다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테크노크라트 전성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전문성을 가진 정통 직업관료와 전문가가 공직사회의 중심이 되도록 하겠다지만, 방법론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경영진단으로 정부와 공공기관의 군살을 빼겠다는 약속도 그렇다. 진단 결과는 늘 정부와 공공기관의 팽창으로 간다는 문제의 본질을 간과하고 있다. 과학기술 부총리, 과학기술 수석비서관 설치가 곧 ‘과학기술 강국’인 것도 아니다. 분권화·자율성과 반대로 옥상옥 계층구조로 갈수록 관료의 파워는 더 세지고, 현장 과학기술자의 위상은 더 왜소해진다.

“대통령의 힘을 빼는 정부가 되겠다”는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혁신가형 정부로 가겠다”고 했다. 대전환 시기에 과거의 관행으로 정부를 운영할 수 없다는 진단은 공감이 가지만, “미래를 위한 최초의 투자자가 돼야 한다”는 능동적인 혁신가형 정부는 말로 되는 게 아니다. 혁신과 상극인 관료주의를 타파하지 않으면, 감사원·검찰까지 개혁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문제의 본질을 꿰뚫은 사람은 정작 한국행정학회·한국정책학회 토론회에 초대받지도 못한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선 후보다. ‘전문직 아닌 공무원(관리직) 정년 폐지’ ‘공무원 20% 감축’ ‘존립 목적을 다한 공공기관은 일몰제 적용으로 소멸’ ‘5급 행정고시 폐지’ ‘관리직 공무원의 공공기관 임용 배제’ ‘인허가 과정 시민배심원제 도입’ ‘판·검사 판결과 구형 재량의 대폭 축소’ ‘부패 공무원 가중 처벌’ ‘청와대·고위공무원 퇴직 후 10년간 취업·소득정보 공개’. 34년 공직 경험으로 관료사회의 급소를 찔렀다. 대한민국의 ‘기득권 카르텔’을 깨겠다는 1호 공약이다. 이 정도는 돼야 대선 공약이라고 할 만하다.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 이 물음만으론 안 된다. 왜 정부는 실패하는가, 왜 규제개혁은 실패하는가. ‘전관예우’ 적폐 하나 척결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부처 신설이나 폐지, 디지털 플랫폼 정부는 껍데기 갈기에 불과하다. 관료개혁 없이는 내일도 오늘의 정부를 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