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안농장, 인근 또 AI 발생에도 살처분 면해…"제도 보완 더해야"
"작년 살처분 정책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누구도 인정하지 않네요.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현실이 참…"

농장 직원들이 11개의 사육동을 돌아가며 일일이 사료량을 확인하고 있었다.
직원들은 닭이 모래 목욕을 할 수 있게 꽁꽁 언 모래를 뒤집어주고, 덜 춥도록 왕겨를 깔아주는 일도 이어갔다.
알을 낳는 산란계 3만7천 마리를 키우던 산안농장은 지난 40여 년간 단 한 번도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지난해 부당한 살처분 규정 탓에 사육하던 모든 닭과 130만개의 계란을 살처분한 바 있다.
이후 병아리부터 다시 입식해 농장을 정상화하려 노력했으나 아직 사육 규모는 2만8천마리 수준에 머물고 있다.
다행히 하루 계란 생산량은 종전의 2만개 수준을 회복했지만, 살처분 이후 계란 생산을 재개할 때까지 9개월이나 소요되면서 기존 판로는 거의 끊긴 상태다.
이로 인해 현재 판매량은 예전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산안농장 관계자는 "우리 농장은 영업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다"며 "생산자는 오로지 좋은 계란을 생산하는 데만 충실하면 될 거란 생각에서 우수한 사육 환경을 갖추는 데 노력했다.
그러나 작년 살처분 여파를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닭도 하나의 공동체 구성원으로 보고 공장식 축사 대신 평사 계사(바닥에 모래를 깐 평평한 땅에서 사육)를 활용하는 등 동물 복지에 신경 써왔다.
동물복지농장 인증 기준은 1㎡당 9마리지만, 산안농장은 4.4마리에 불과할 정도로 사육 환경이 우수했다.
하지만 산안농장은 이러한 노력에도 '규정에 따라 AI 발생 농가로부터 3㎞ 이내면 예방적 살처분한다'는 행정명령이 내려오자 이를 거부했다.
1984년부터 37년간 단 한 번도 AI가 발생하지 않았고, '3㎞ 내 강제 살처분' 규정은 2018년 12월 새로 생긴 행정 편의주의적 조치일뿐 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이 농장은 결국 두 달여 뒤인 지난해 2월 닭을 모두 살처분했다.
'산안농장 사태'로 불린 이 사례로 당국의 부당한 살처분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결국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AI 발생 농장 500m 이내만 살처분하는 방향으로 살처분 규정을 개정한 데 이어 농장 방역 상황을 반영해 살처분 규정을 차등 적용하는 내용의 '질병관리등급제'를 도입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2일 산안농장 인근 농장에서 또 AI가 발생했다.
지난해 '산안농장 사태'를 불러온 그 발생 농장이다.
다행히 변경된 규정이 적용되면서 산안농장의 경우 이번에는 예방적 살처분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산안농장 관계자는 "인근 같은 농장에서 작년에 이어 또 AI가 발생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우리 농장은 살처분하지 않고도 아직 안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며 "작년 사태가 정책의 잘못을 증명하는 사례일 텐데도 그때 살처분 피해에 대해 사과하는 사람도, 책임을 인정하는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계사에 들어가기 전 입고 입던 옷을 속옷까지 다 벗고 샤워를 한 뒤 새 옷을 입고 소독한 후 들어간다.
닭을 보러 가는 이 과정에만 30분 이상 걸린다.
계란 배송 차량은 농장에서 나갈 때 다 소독하는데도 거점 소독시설에 들렀다가 배송처로 향하고, 돌아올 땐 다시 이 과정을 반복하느라 하루 2시간 이상이 추가로 소요된다.
농장 관계자는 "당국에선 위험성을 낮추기 위해 여러 제도를 보완했으나 실효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많다"며 "농장들이 불필요한 방역 과정에 하루에 몇 시간씩을 허비하기보단 꼭 필요한 방역만 할 수 있도록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