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비만 치료제 시장은 그야말로 ‘레드오션’이다. 시장 선두를 달리던 ‘벨빅’이 2020년 시장에서 퇴출당하고,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가 새롭게 등장하면서 시장이 재편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비만 치료제를 개발하는 기업들은 이 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임상 속도를 높이는 등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에 반해 유전성 희귀 비만 치료제 시장은 여전히 ‘주인 없는’ 시장이다. 2020년 리듬파마슈티컬스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희귀 비만 치료제 ‘임시브리’(성분명 세트멜라노타이드)의 품목허가를 받았지만, 아직 매출보다는 환자를 발굴하고 있는 단계다.

LG화학은 희귀 비만 치료제로 미국 시장에 빠르게 진입한 뒤, 일반 비만 치료제로 LB54640의 적응증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 현재 미국에서 건강한 비만 환자 96명을 대상으로 임상 1상을 진행하고 있으며, 올해 상반기 내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임현주 LG화학 신약연구소장은 “건강한 비만 환자에서도 유의미한 체중감량이 확인된다면 일반 비만 환자까지 적응증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전적 결함이 있는 희귀 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2상과 3상은 올해 하반기부터 동시에 진행해 2027년 FDA의 승인을 받는 것이 목표다. 임 소장은 “2020년 9월 LB54640이 FDA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돼 해당 트랙을 통해 빠르게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LG화학 미국 도전장, 경구제로 승산 있어
LG화학의 LB54640은 MC4R 경로에 문제가 있는 유전성 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치료제다. 임시브리와 동일한 타깃이다. MC4R은 뇌 시상하부의 신경세포에 발현된 수용체로,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중추다. MC4R 경로에 문제가 생기면 계속해서 배고픔을 느낀다. LB54640은 MC4R 수용체를 활성화해 인위적으로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약물이다.

이런 유전적 결함을 가지고 있는 비만 환자는 중증 비만 환자의 약 10%를 차지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업계에서는 실제 환자는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임 소장은 “유전자 검사를 통해 희귀 비만 진단을 받지 못한 잠재적 환자가 많다”며 “2040년경에는 잠재적 환자의 60% 이상이 유전적 검사를 통해 진단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했다. 실제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이밸류에이트파마는 미국 희귀 비만 치료제 시장이 매년 성장해 2027년에는 약 1조 원대 규모로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회사는 먼저 시장에 진입한 리듬파마슈티컬스의 임시브리가 시장의 성장을 가속화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아직은 작은 시장이기 때문에 리듬파마슈티컬스가 유전자 검사의 대중화 등 잠재적 환자 발굴에 많은 자원을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 소장은 “경쟁사가 길을 잘 닦아주고 있는 셈”이라며 “LB54640이 가진 강점이 분명하기 때문에 임시브리가 발굴한 시장을 상당부분 가져올 수 있다”고 자신했다.

임 소장이 강조한 LB54640의 강점은 제형이다. LB54640은 하루에 한 번 먹으면 되는 경구제로 개발되고 있다. 반면 임시브리는 매일 투여해야 하는 주사제다. 비만과 같은 만성질환은 제형에 따라 환자의 복약순응도 차이가 크기 때문에 경구제는 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다. 업계에서는 안전하고 효능도 좋은 삭센다가 비만 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를 하지 못하는 이유가 주사제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효능도 뛰어나다. MC4R 경로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망가진 쥐 모델에서 실험한 결과, LB54640을 투여한 쥐는 체중이 최대 17.4%까지 줄어들었다. 일반 비만 쥐에서도 종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10% 안팎의 체중 감량 효과를 확인했다.

임 소장은 “전임상에서 여러 동물을 대상으로 임시브리와 LB54640의 효능을 비교 분석한 결과, 동등성 이상의 효과를 확인했다”며 “앞으로의 임상에서 효능이 증명된다면 편의성과 효능을 모두 잡은 유일한 비만 치료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초기 단계에 자원 투자…
장기 복용에도 안전한 약물 발굴

회사는 LB54640이 출시될 경우 안정적인 현금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전적인 결함으로 비만이 발생한 환자는 목표 체중에 도달하더라도 꾸준히 약을 복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임 소장은 “주로 10살 전후로 진단받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소 수십 년간 약을 복용해야 한다”며 “안전성만 보증된다면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때문에 장기 복용 시 약물의 안전성과 내성은 LG화학이 가장 큰 공을 들인 부분이다. 과거 MSD와 일라이릴리, 노보노디스크, 아스트라제네카 등 많은 글로벌 제약사가 MC4R 경로를 타깃으로 비만 치료제를 개발했지만 모두 임상을 중단했다. 모발이나 피부색이 변하거나 혈압이 상승하는 등 심각한 부작용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MC4R과 구조가 유사한 MC1R, MC3R, MC5R 등의 수용체 잘못 결합하는 ‘오프타깃 효과’가 원인이었다.

LG화학은 빅파마들의 수순을 밟지 않기 위해 수만 개의 물질을 스크리닝해 MC4R에 대한 선택성이 높은 후보물질을 발굴했다. 이후 후보물질 각각에 대해 모두 동물실험을 진행해 가장 안전하고 효능이 높은 LB54640을 최종적으로 선택했다.

임 소장은 “초기 물질 발굴 단계에 많은 자원을 투자해 안전성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마쳤다”며 “임상 2상, 3상에서도 큰 부작용 없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지원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2년 1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