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청 연출 "후배 정경호, 연극 꼭 하고 싶어했다"
"'엔젤스 인 아메리카'는 편견의 장벽 한방에 무너뜨리는 작품"
1985년 미국 뉴욕. 미국으로 이주해 가족을 일군 유대인 여인의 장례식이 열리고 있다.

할머니 장례식에 참석한 루이스(김세환 분)는 동성 연인 프라이어(정경호)가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듣고 괴로워한다.

법무관으로 일하는 모르몬교도 조(정환)는 '악마의 변호사' 로이 콘(박지일)에게 워싱턴DC 법무부 일을 제안받지만, 약물에 중독된 아내 하퍼(김보나)를 설득하기 어렵다.

병세가 악화하는 연인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낀 루이스는 프라이어를 떠나고, 프라이어는 환청 같은 천상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국립극단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파트 원: 밀레니엄이 다가온다'가 지난달 26일 개막했다.

미국 극작가 토니 커시너의 대표작으로 퓰리처상과 토니상, 드라마데스크상 등을 받은 작품이다.

내년 2월에 선보이는 '파트 투: 페레스트로이카'(4시간)를 합쳐 공연 시간이 총 8시간에 이르는 부담스러운 작품이지만 티켓은 발매 당일 매진되며 높은 관심을 받았다.

작품은 동성애, 인종, 종교, 정치, 환경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동성애를 둘러싼 인물들 간의 갈등을 그리면서도 그 바탕에는 유대교, 기독교, 모르몬교 등 다양한 종교적인 상징과 은유가 깔려있고, 어려운 정치이념과 철학적 이야기도 들려준다.

"'엔젤스 인 아메리카'는 편견의 장벽 한방에 무너뜨리는 작품"
1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진행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신유청 연출(40)은 '엔젤스 인 아메리카'에는 성 소수자와 차별, 신과 인간의 관계 등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결국 작품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것 같다"고 소개했다.

이어 "작품에는 사랑, 용서, 관용이란 단어가 많이 나오는데, 이런 것은 어떤 위치에 올라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극 중 프라이어, 루이스, 조, 로이 콘, 벨리즈(박용우) 등은 성 소수자다.

이들 중 신 연출은 특히 드래그퀸(여장 남성) 출신 흑인 간호사 벨리즈에 주목한다.

그는 "벨리즈는 차별을 가장 많이 받은 인종으로 불평등과 모순 속에 살아가지만, 프라이어는 그를 순교자라고 한다"며 "순교자는 살아서의 영광을 위해 일하는 게 아니고, 죽어서 어떤 씨가 뿌려질 것을 바라면서 사는 분들이다.

벨리즈의 싸움 방식이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극에서는 히브리어, 프랑스어 등 이해할 수 없는 대사가 그대로 나온다.

이에 대해 신 연출은 "언어가 일종의 장벽일 수 있지만 그 언어만이 가진 특별한 뉘앙스가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엔젤스 인 아메리카'는 편견의 장벽 한방에 무너뜨리는 작품"
극에서는 회전 무대가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장면이 바뀐다.

조와 하퍼의 침실, 프라이어가 입원한 병원, 조와 로이 콘이 마음을 나누는 술집 등 다양한 공간이 무대가 회전하며 나타난다.

특히 거실과 병실이란 각기 다른 공간에서 대사와 동선이 서로 맞물리며 조와 하퍼, 프라이어와 루이스의 갈등이 제각각 폭발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이 작품으로 연극 무대에 데뷔한 배우 정경호는 연인에게 버림받고, 에이즈로 고통스러워하는 프라이어 역으로 열연하고 있다.

환상 속에서 분홍색 가운을 걸치고 짙은 화장에 긴 속눈썹을 붙인 여장 남자의 모습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정경호의 중앙대학교 2년 선배인 신 연출은 "내적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갖고 있으면서 남성적인 배우가 필요했는데, 정경호라는 배우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경호도 연극을 꼭 하고 싶다고 했다"고 캐스팅 배경을 밝혔다.

이어 "우리나라에는 영화·연극·뮤지컬 배우 간에 선명한 선이 있다.

작품을 통해 그런 선을 지워보고 싶었다.

장벽을 깨고 다른 장르의 사람이 함께하는 것은 이 작품의 메시지와도 닿아 있다"고 했다.

신 연출은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그린 '와이프', 동성애 혐오 범죄를 다룬 '빈센트 리버', 드래그퀸의 이야기인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 등 성 소수자 관련 작품들을 선보여왔다.

이에 대해 그는 "이런 작업은 '와이프'에서 시작됐는데, 성 소수자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은 아니다.

더 큰 보편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하게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파트 투'에서도 장벽을 철폐해가는 과정이 이어집니다.

사람은 자기가 아는 한에서 바라보게 되는데, 경험하지 않으면 시선이 열리기 어렵죠. 작품을 통해 우리 안의 장벽을 한방에 무너뜨리고자 합니다.

"
공연은 오는 26일까지 진행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