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병은 전설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가 은퇴 이후 앓았던 병으로 유명하다. 통산 61전 56승이라는 화려한 전적을 남긴 알리는 32년이나 파킨슨병과 싸우다 2016년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은 지 5년이 지났지만 파킨슨병은 여전히 인류가 정복하지 못한 질병이다.
[글로벌 시장 분석] 알리도 이기지 못한 파킨슨병, 여전한 미충족 수요
일본 교와기린은 지난 11월 15일 약효 소진 현상(웨어링오프)을 보이는 파킨슨병 환자에 대한 보조 치료제 ‘이스트라데필린’이 유럽의약품청(EMA) 약물사용자문위원회(CHMP)로부터 승인 권고를 받는 데 실패했다고 밝혔다.

CHMP는 올 7월에도 이스트라데필린의 승인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전달했고, 재심사가 이뤄져왔다. 당시 CHMP는 파킨슨병 환자 3245명을 대상으로 한 8건의 주요 연구결과가 “일관되지 않다”고 지적했다. 8건의 연구 중 4건만이 ‘오프’(레보도파의 약효 시간이 단축되고 복용 후 시간이 경과하면 효과가 소실되는 현상) 시간의 감소를 보여줬으며, 고용량에서도 효과가 증가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스트라데필린은 2013년 일본에서 최초로 승인받고, 미국에서는 2019년 허가받았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이스트라데필린의 허가를 검토할 때는 1143명의 파킨슨병 환자에게 시행한 4건의 12주 위약 대조 임상 연구가 기반이었다. FDA는 이 4건의 연구에서 이스트라데필린이 위약을 투여받은 환자에 비해 하루 오프 시간을 유의미하게 감소시켰음을 확인했다.

파킨슨병 치료제 시장, 2026년 7조 원
파킨슨병은 알츠하이머병 다음으로 발병률이 높은 퇴행성 뇌질환이다. 중뇌에 있는 흑질에서 도파민을 분비하는 신경세포가 서서히 소실돼 움직임에 장애가 생긴다. 도파민은 운동에 필요한 신경전달물질이다. 주로 노년층에서 발생하는 질환으로 60세 이상의 약 1%, 65세 이상에서는 약 2%가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

파킨슨병은 노인성 질환이기 때문에 인구 노령화에 따른 발병률 증가가 예상된다. 시장조사기관 데이터모니터 헬스케어는 주요 7개국(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의 파킨슨병 환자가 2017년 200만 명에서, 2037년에 44.4% 증가한 290만 명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파킨슨병 치료제 시장도 확대될 것이란 예상이다. 또 다른 시장조사기관인 이벨류에이트파마는 세계 파킨슨병 치료제 시장(상위 10개 제품 기준)이 2020년 26억5600만 달러에서 연평균 15.0%씩 성장해 2026년에는 61억5000만 달러(약 7조3000억 원)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했다.

파킨슨병의 발병 원인인 도파민 신경세포의 소실이 왜 일어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현재 파킨슨병은 치료가 불가능하며, 증상완화제로 증상을 줄여 무리 없이 일상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표준치료법이다.

치료제도 도파민 감소를 해결할 목적으로 개발됐다. 아직까지 도파민 신경세포를 재생시키거나 사멸을 정지시키는 약물은 개발되지 않았다. 현재 처방되는 대표적인 약물은 도파민의 전구물질인 레보도파다. 레보도파는 위장관에서 흡수돼 뇌로 이동한 뒤, 도파민으로 변환돼 파킨슨병 환자의 뇌에 부족한 도파민을 보충해준다.

그러나 레보도파 치료 후 3~5년이 지나면 이상운동증이나 웨어링오프 등의 부작용이 발생한다. 부작용 극복 및 근본적 치료 등의 미충족 수요가 여전한 것이다.

파킨슨병 정복을 향한 도전
파킨슨병 치료제의 미충족 수요를 해결하기 위한 국내외 제약·바이오 기업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교와기린은 웨어링오프에 대한 레보도파의 보조 치료제로 이스트라데필린을 개발했고, 부광약품의 자회사 콘테라파마는 레보도파로 인한 이상운동증 치료제인 ‘JM-010’의 임상 2상을 미국과 유럽에서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파킨슨병 발병의 근원이 알파시누클레인의 응집이라는 가설 아래 이를 제거하기 위한 다양한 임상들이 진행되고 있다. 정상인의 뇌에는 도파민을 조절하기 위한 단백질 알파시누클레인이 존재한다. 알파시누클레인이 변형돼 응집될 경우 루이소체가 형성된다. 독성을 가진 루이소체는 신경세포에 축적돼 신경세포를 죽이거나 신경염증을 유도하게 된다. 파킨슨병 환자 70~90%에서 도파민 신경세포에 루이소체가 관찰된다.

알파시누클레인을 제거하는 항체의 개발은 아직까지 성공적이지 못하다. 2020년 4월 로슈는 프레지네주맙 임상 2상에서 1차 평가지표 달성에 실패했다고 밝혔다. 올 들어서는 바이오젠의 신파네맙과 애브비의 ‘ABBV-0805’의 임상 중단 소식이 전해졌다.

알파시누클레인 항체 개발의 걸림돌로는 뇌혈관장벽(BBB)이 거론된다. BBB는 혈액과 뇌 사이를 차단하는 보호막이다. 저분자 물질은 통과시키지만 500Da(달톤) 이상의 고분자 물질은 뇌로의 이동을 막는다. 고분자 물질인 항체의 BBB 통과율은 0.1~0.5%로 알려졌다.

에이비엘바이오는 BBB 통과율을 높인 이중항체 기술로 ‘ABL301’을 개발하고 있다. 알파시누클레인 항체와 ‘IGF1R’ 항체를 결합한 것이다. IGF1R은 뇌 내피세포에 많이 발현된다. IGF1R 항체를 이용해 BBB에 알파시누클레인 항체가 뇌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방식이다. 영장류 실험 결과, ABL301은 단독항체 대비 13배 높은 BBB 투과율을 나타냈다. 내년 상반기께 FDA에 임상 1상을 신청할 계획이다.

디앤디파마텍과 펩트론은 당뇨병에 쓰이는 ‘GLP-1’을 기반으로 파킨슨병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뇌에서 발생하는 인슐린 신호전달 이상이 퇴행성 뇌질환의 원인이란 가설이 토대다.

인슐린 신호전달에 이상이 생기면 뇌에서도 신경세포의 기능이 저하되고, 신경염증과 독성 단백질 축적 등 일련의 병리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디앤디파마텍은 미국에서, 펩트론은 한국에서 임상 2상 중이다.

카이노스메드는 최근 FDA로부터 ‘KM-819’의 임상 2상을 승인받았다. 세포자살 및 세포괴사 등을 촉진하는 것으로 알려진 ‘FAF1’ 단백질의 과발현을 억제하는 기전을 갖고 있다. FAF1의 과발현을 억제해 알파시누클레인 축적과 신경세포 사멸을 막을 수 있는 이중 효과를 기대 중이다.

이 밖에 셀리버리는 독성 단백질 제거에 관여하는 ‘파킨’에 BBB 투과율을 높이는 약물전달 기술 ‘TSDT’를 적용해 파킨슨병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 임상 1상을 개시할 계획으로, 일동제약과 공동 개발한다.
[글로벌 시장 분석] 알리도 이기지 못한 파킨슨병, 여전한 미충족 수요
한민수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2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