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PAN NOW] 일본 근대 역사의 출발지 '요코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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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도쿄 옆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다.
에도시대 해상으로부터 에도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즉 도쿄가 세계와 연결되는 전략적 요충지로 에도 막부 말기 외국 함선이 들어오는 거점으로 ‘근대일본’이 시작되는 역사적인 장소다.
1853년 미국의 페리제독은 쿠로후네 즉, 검은 철선 4척의 군함으로 이곳에 들어와 무력 시위를 벌인 후 1년 후 다시 돌아오겠다며 개항을 요구하고 돌아가는 사건이발생한다.
이때부터 일본에서는 외국인이 일본에서 활약할 경우 ‘쿠로후네’라고 불러주는 표현이 존재한다. 이듬해 1854년 2월13일 9척의 배와 함께 다시 나타난 페리에 의해 일본은 쇄국정책을 폐지하고 개항을 결정한다.
나의 첫 일정은 사루시마다. 이곳을 가기 위해 나는 미카tk 공원에서 섬까지 운행하는 배를 탔다.
도쿄만에 떠있는 무인도 “사루시마”는 남국의 정취 가득한 낭만적인 장소며 여름이되면 해수욕장과 바베큐를 목적으로하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인기 명소다. “사루시마” 즉 “원숭이 섬”의 역사는 에도 시대부터 근대 태평양 전쟁까지 요새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다. 포대와 탄약고 등 지금까지 전쟁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어 다수의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로 등장한 곳이기도 하다.
육지와 섬 사이를 오고 가는 배는 1시간 간격으로 운항되기 때문에 배에서 내려 1시간 정도 섬을 일주하고 다시 배를 탈수가 있지만 여유를 갖고 감상하고 싶다면 2시간도 좋다.
파도소리를 리듬 삼아 바비큐 광장에서 건너편 치바현을 바라보며 도시락 또는 간식을 즐겨도 좋다. 섬의 곳곳에 있는 탄약 창고와 터널은 인스타그램이나 SNS에 올리기 좋은 사진 소재다.
1시간은 생각보다 빨랐지만 다음 일정 때문에 약간 서둘러 보고 배에 몸을 실었다.
배가 도착한 곳은 미카사 공원으로 1904년 러일전쟁 승리에 함께 참가한 전함 “미카사”호가 전시되어 있다. 나라현에 있는 미카사 산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나는 전함의 내부를 보기로 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 후 일본 1년 예산의 4배에 해당하는 돈을 전쟁보상금으로 받게 되며 그 가운데 절반정도를 군비 확충에 사용한다. 그때 영국에 주문한 전함이 ‘미카사’다. 페리제독에 의해 개항하고 그때 목격한 서양의 새로운 문물에 눈을 뜬 일본은 1871년부터 22개월간 정부 고관의 절반과 유학생으로 구성된 100여명의 ‘이와쿠라 사절단’을 미국과 유럽으로 보내는데 예산은 당시 재정수입의 2%에 달한다.
1차 목적은 미국과 영국과 조약한 불평등 조약의 재협상 이지만 2차 목적은 교육, 과학기술, 문화, 군사, 사회와 경제구조 전반의 정보를 수집해 일본 근대화를 촉진하는 것이다.
이때 사절단들은 영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원동력이 막강한 해군력이며 그것의 기본은 전함에 있다고 판단을 하고 실행한 것이 현대식 전함 소유다. 미사카함은 러일전쟁에 참가해 러시아 발틱 함대와 교전을 벌이며 활약했고 이 전투에서 미사카함도 113명의 사상자를 낸다.
전쟁이 끝난 후 1905년, 탄약고의 폭발사고로 침몰해 339명의 전사자를 내는데 당시 수병들이 알코올로 장난을 치다 폭발이 일어났다는 설과 화약 사고라는 설이 있다.
1908년 수리 후 현역으로 복귀해 1차 세계대전을 참가하고 이후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에 의해 폐함이 결정돼 요코스카에 ‘기념함’으로 보존된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에서 패한 후 연합군으로부터 철거 요구를 받지만 당시 주둔했던 미국군인 오락시설을 위해 함상에 ‘캬바레’가 운영되었다.
이때 배의 무기나 구조물은 모두 철거되어 황폐해졌는데 이를 본 영국인이 ‘저팬타임즈’에 기고해 복원운동이 일어나 지금의 ‘기념함 미카사’로 재 탄생하게 되었다. 공원 옆에는 아직도 미군 기지가 있으며 건너편에는 미국식 Bar와 군복을 판매하는 상점가가 있다. 나는 잠시 한국의 이태원에 왔다고 착각했다. 남국의 섬을 연상시키는 사루시마에 따스한 햇살이 비추고 있다. / JAPAN NOW요코스카는 해군카레로 유명한데 ‘일본해군요리 기술 참고서’의 레시피에 기초해 만들어 졌으며 우유와 샐러드가 세트로 나오는 특징으로 고기와 야채의 영양 균형이 좋고 손쉽게 만들 수 있어 배안에서 먹기 좋은 이유다.
특히 망망 대해 위에서 생활하다 보면 날짜 감각이 없어지기 때문에 금요일은 카레를 먹어 날짜 감각을 인지할수 있게 했다. 시내에는 해군카레를 재현하는 유명 레스토랑들이 있는데 가게 추천메뉴인 가츠카레와 해군카레를 시식해 보기로 했다.
일본카레는 본고장의 맛 인도 카레보다 한국인들이나 일본인에게는 입에 잘 맞는것같다. 한국인들이 일본 여행을 오면 필수로 쇼핑하는 품목 중 하나가 그것을 증명해 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일본 역사에 페리제독과 요코스카가 없다면 지금 세계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상상해 봤다.
김정욱 프리저널리스트 / conakim.jp@gmail.com
에도시대 해상으로부터 에도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즉 도쿄가 세계와 연결되는 전략적 요충지로 에도 막부 말기 외국 함선이 들어오는 거점으로 ‘근대일본’이 시작되는 역사적인 장소다.
1853년 미국의 페리제독은 쿠로후네 즉, 검은 철선 4척의 군함으로 이곳에 들어와 무력 시위를 벌인 후 1년 후 다시 돌아오겠다며 개항을 요구하고 돌아가는 사건이발생한다.
이때부터 일본에서는 외국인이 일본에서 활약할 경우 ‘쿠로후네’라고 불러주는 표현이 존재한다. 이듬해 1854년 2월13일 9척의 배와 함께 다시 나타난 페리에 의해 일본은 쇄국정책을 폐지하고 개항을 결정한다.
나의 첫 일정은 사루시마다. 이곳을 가기 위해 나는 미카tk 공원에서 섬까지 운행하는 배를 탔다.
도쿄만에 떠있는 무인도 “사루시마”는 남국의 정취 가득한 낭만적인 장소며 여름이되면 해수욕장과 바베큐를 목적으로하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인기 명소다. “사루시마” 즉 “원숭이 섬”의 역사는 에도 시대부터 근대 태평양 전쟁까지 요새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다. 포대와 탄약고 등 지금까지 전쟁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어 다수의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로 등장한 곳이기도 하다.
육지와 섬 사이를 오고 가는 배는 1시간 간격으로 운항되기 때문에 배에서 내려 1시간 정도 섬을 일주하고 다시 배를 탈수가 있지만 여유를 갖고 감상하고 싶다면 2시간도 좋다.
파도소리를 리듬 삼아 바비큐 광장에서 건너편 치바현을 바라보며 도시락 또는 간식을 즐겨도 좋다. 섬의 곳곳에 있는 탄약 창고와 터널은 인스타그램이나 SNS에 올리기 좋은 사진 소재다.
1시간은 생각보다 빨랐지만 다음 일정 때문에 약간 서둘러 보고 배에 몸을 실었다.
배가 도착한 곳은 미카사 공원으로 1904년 러일전쟁 승리에 함께 참가한 전함 “미카사”호가 전시되어 있다. 나라현에 있는 미카사 산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나는 전함의 내부를 보기로 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 후 일본 1년 예산의 4배에 해당하는 돈을 전쟁보상금으로 받게 되며 그 가운데 절반정도를 군비 확충에 사용한다. 그때 영국에 주문한 전함이 ‘미카사’다. 페리제독에 의해 개항하고 그때 목격한 서양의 새로운 문물에 눈을 뜬 일본은 1871년부터 22개월간 정부 고관의 절반과 유학생으로 구성된 100여명의 ‘이와쿠라 사절단’을 미국과 유럽으로 보내는데 예산은 당시 재정수입의 2%에 달한다.
1차 목적은 미국과 영국과 조약한 불평등 조약의 재협상 이지만 2차 목적은 교육, 과학기술, 문화, 군사, 사회와 경제구조 전반의 정보를 수집해 일본 근대화를 촉진하는 것이다.
이때 사절단들은 영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원동력이 막강한 해군력이며 그것의 기본은 전함에 있다고 판단을 하고 실행한 것이 현대식 전함 소유다. 미사카함은 러일전쟁에 참가해 러시아 발틱 함대와 교전을 벌이며 활약했고 이 전투에서 미사카함도 113명의 사상자를 낸다.
전쟁이 끝난 후 1905년, 탄약고의 폭발사고로 침몰해 339명의 전사자를 내는데 당시 수병들이 알코올로 장난을 치다 폭발이 일어났다는 설과 화약 사고라는 설이 있다.
1908년 수리 후 현역으로 복귀해 1차 세계대전을 참가하고 이후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에 의해 폐함이 결정돼 요코스카에 ‘기념함’으로 보존된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에서 패한 후 연합군으로부터 철거 요구를 받지만 당시 주둔했던 미국군인 오락시설을 위해 함상에 ‘캬바레’가 운영되었다.
이때 배의 무기나 구조물은 모두 철거되어 황폐해졌는데 이를 본 영국인이 ‘저팬타임즈’에 기고해 복원운동이 일어나 지금의 ‘기념함 미카사’로 재 탄생하게 되었다. 공원 옆에는 아직도 미군 기지가 있으며 건너편에는 미국식 Bar와 군복을 판매하는 상점가가 있다. 나는 잠시 한국의 이태원에 왔다고 착각했다. 남국의 섬을 연상시키는 사루시마에 따스한 햇살이 비추고 있다. / JAPAN NOW요코스카는 해군카레로 유명한데 ‘일본해군요리 기술 참고서’의 레시피에 기초해 만들어 졌으며 우유와 샐러드가 세트로 나오는 특징으로 고기와 야채의 영양 균형이 좋고 손쉽게 만들 수 있어 배안에서 먹기 좋은 이유다.
특히 망망 대해 위에서 생활하다 보면 날짜 감각이 없어지기 때문에 금요일은 카레를 먹어 날짜 감각을 인지할수 있게 했다. 시내에는 해군카레를 재현하는 유명 레스토랑들이 있는데 가게 추천메뉴인 가츠카레와 해군카레를 시식해 보기로 했다.
일본카레는 본고장의 맛 인도 카레보다 한국인들이나 일본인에게는 입에 잘 맞는것같다. 한국인들이 일본 여행을 오면 필수로 쇼핑하는 품목 중 하나가 그것을 증명해 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일본 역사에 페리제독과 요코스카가 없다면 지금 세계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상상해 봤다.
김정욱 프리저널리스트 / conakim.jp@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