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명으로 신문고 제도를 운영하면 안되는 이유
[홍석환의 인사 잘하는 남자] 가명으로 신문고 제도를 운영하면 안되는 이유
직원들의 애로사항을 호소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라

A기업 자문을 할 때의 일이다. CEO가 인사팀장에게 “직원들의 불평불만, 애로사항을 직접 호소할 수 있도록 사내 인트라넷에 신문고와 같은 사이트를 만들고 홍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인사팀장은 이 사이트에 올리는 사람들의 이름을 실명으로 할 것인가? 가명으로 해도 될 것인가? 묻는다.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인사팀장에게 반드시 실명으로 하고, 불평불만과 애로사항만 올리는 창이 아닌 회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제안도 할 수 있도록 그 영역을 넓혀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결과는 불평불만과 애로사항만 올리며 누가 올렸는지 모르도록 실명 공개를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실명으로 하면 아무도 올리지 않는다는 판단때문이었다.

제도를 시행하고 한 달이 되지 않아 이 사이트는 폐쇄되었고, 회사는 직원에게 큰 신뢰를 잃게 되었다. 얼마 되지 않는 내용과 댓글의 대부분이 남을 헐뜯고, 관리자와 경영층을 비난하며, 최고 경영자의 출퇴근과 막말을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가?

좋은 취지에서 출발한 사내 신문고 제도가 소기의 성과를 낳지 못하고 사라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CEO입장에서는 직원들의 불평불만 사항을 듣고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라면 적극 해결해 주고 싶을 것이다. 문제는 이 방법을 직접 듣지 않고 가명의 형식으로 회사 인트라넷을 통해 얻으려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얼굴이나 이름을 감춘 가명의 이름 뒤에 숨게 되면, 평소에는 결코 하지 않던 일들을 행하게 된다. 자신이 했으면서도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생각에 있지도 않은 일을 만들거나, 자신이 원했던 일을 부풀려 이야기한다. 심한 경우, 다른 사람들을 모욕하고 헐뜯으며 존중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실에 근거하여 조치를 해야 하는데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본의 아닌 희생자가 나타나기도 한다.

미국의 한 가정에서 변호사인 백인 남성이 울고 있는 아이를 앉고 어쩔 줄 몰라 한다. 잠시 후 동양인 여성이 들어와 아이를 앉고 달래는, 10초 동영상에 달린 댓글의 내용이 무엇일 것이라 생각하는가? 댓글의 대부분은 동양인 여성을 보모로 판단하고 보모의 잘못을 지적하는 내용이었다. 왜 동양인 여성이 엄마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일까? 사람들은 누군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말에 상처를 받으며, 일면식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던진 인종 차별적인 비난에 모욕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인터넷 상에서 사람들은 쉽게 판단하고 쉽게 글을 올린다. 자신의 생각만 중요하고 그 글로 인하여 상처받을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가 없다.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당사자와 함께 앉아 이야기하는 것과 책상에 앉아 PC를 보며 뒷공론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가명의 신문고 제도에서는 전제가 실명이 아니기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 애로사항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모른다. 물론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이는 비밀 보장이라는 제도의 취지와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 직접적으로 해결할 수 없고, 가명의 틀 속에 온갖 험담을 쏟아 부기 때문에 제도의 장점은 사라지고 분열과 갈등을 조장해 신뢰를 무너트리는 제도로 남게 된다.

진정 직원들의 애로사항을 듣고, 해결해 주고 싶다면 먼저 신뢰를 고려해야 한다. 제도를 운영함에 있어 신뢰가 기반으로 열린 소통을 해야 한다. 얼굴이나 이름을 가린다고 열린 소통이 아니다. 진정성을 갖고 직원의 성장을 바라는 마음에서 제도의 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홍석환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홍석환의 HR 전략 컨설팅, no1gsc@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