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경우는 파나마에서 자동차 부품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수많은 아이템을 했다. 아마 백화점에 널려져 있는 상품만큼 했을 것이다. 해봤던 품목을 대충 꼽으라면 닭털 뽑는 기계, 방탄복, 게르마늄 양말, 부직포, 강관류, 철강류, 골판 지붕재 등등 …… 한동안은 어떤 생각이 있어서 아이템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걸리기만 하면 수출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그 아무거나, 무엇이든이라도 하는 게 만만치 않았다. 내가 수출하거나 국내에서 팔아볼 만한 아이템을 찾는 것 자체가 버거웠다. 일단 찾아진 아이템도 내가 물건을 만들지 않는한 그 물건에 적응해서 마케팅 계획을 세워야 하고, 내가 공장을 하더라도 원부자재 조달과 공장 운영에 관한 수많은 변수가 있다. 결국 무엇 하나 내가 상당한 정도의 통제를 할 수 있는 내부 환경이란 없는 셈이다.

흔히 말하는 마케팅의 격언 중에는 ‘시장을 거스르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맨발신발이야말로 시장을 개념을 거꾸로 한 제품이었다. 게다가 뒤꿈치마저 전혀 없어서 키가 작아 보인다는 이유로 여성들의 외면을 받았다. 그나마 위안을 받는다면 바로 마라톤 마니아들이었다. 잘 뛰는 마라토너들의 신발을 보면 밑창이 매우 얇다. 오랜 시간을 뛰기 때문에 두툼한 쿠션이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정 반대이다. 왜냐하면 쿠션이 두툼할수록 충격의 되먹임이 커지기 때문이다. 발바닥의 충격은 적게 느껴지지만 무릎이나 고관절의 충격은 몇 배로 증폭된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미국과 유럽에서 맨발로 걷고 달리기의 유용성에 대한 의학적 연구 자료들이 연달아 나오면서 마케팅할 바탕은 많았다. 하지만 워낙 특성이 강한 제품이라 시장에 맞도록 개선할 방도가 떠오르지 않아 10년째 온라인 홍보로 버티며 이제까지 왔다. 그리고 시장이 변한다는 조짐이 보인다. 그래서 좀 더 열심히 버텨보기 위한 전략을 짤 필요가 느껴졌다.
하지만 마케팅이란 경영 전략 책들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교과서들은 대체로 구멍가게들이 가장 약한 자금력, 인력의 수, 종업원과 사장의 능력 등은 통제 가능한 내부 변수로 취급한다. 이론 책에서는 선택 가능한 상수들이 구멍가게 사장들에게는 가장 구하기 어려운 절대 변수로 작용한다. 구멍가게의 유일한 전략은 매번 매 순간 변하는 환경, 심지어는 대기업이 소비자 상대 전략이나 옆 집 가게가 업종을 바꾸어도 내 상황도 바뀐다. 구멍가게의 전략은 포지셔닝, 4P, 마이클 포터의 경쟁론 등등이 아니라, ‘그때그때 달라요’ 전략을 취하면서, 버티고 버티다 기회가 올 때 잘하면 대박, 못해도 본전이라도 하면 된다. 하지만 전략을 짜기에는 시장이 매우 복잡해졌다. 정보산업이 발달해서 세계의 어디서 누가 무엇을 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장사 비밀을 지키면서 손님을 끌려고 하면 알릴 방도가 없다. 결국 장사 방법을 널리 알려야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온다. 차라리 사업 비결을 드러내놓고 홍보하는 수밖에 없다. 그럼 즉시로 세계의 모든 경쟁자가 내 비밀을 알게 된다. 경쟁자뿐만 아니라, 정치도 복잡해졌다. 어느 날 갑자기 한국에서 ‘NO JAPAN’하는 바람에 날벼락 맞은 사람이 하나둘이 아니다. 일본에서 한국사람 상대하는 사업도 그렇지만, 한국에서 한국 사람 상대하는데 NO JAPAN 때문에 피 본다. 코로나19 때문에 손가락 빠는 기업 교육 강사, 식당업 종사자들 또한 부지기수이다. 지금 당장 어렵다. 하지만 지금만 쳐다보면 그 무게에 눌려서 미래를 놓친다.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구멍가게 필맥스의 전략을 구상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그 전략의 시장은 일반적인 환경 분석에서 시작해서 제품 개발로 가는 것이 아니라, 구멍가게답게 제품 개발로 시작했으니 환경에 적응하고, 오래 버틸 수 있는 방법을 구하는 것으로 해야 한다.
코로나19 때문에 신제품 출시가 늦어지고 있다. 하지만 곧 새로운 신발이 어렵사리 온다. 봄이 오면 나도 새 신발을 신고 팔짝 뛰어 볼란다.
홍재화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