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골동품을 수집하는 사람이 하루는 시골 장터를 찾아갔다. 시골 장터에서는 뜻밖의 골동품을 구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장터를 왔다 갔다 하다 보니 한 허름한 노인이 강아지 한 마리를 놓고서 팔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강아지 옆에 개밥그릇이 놓여 있는데, 그릇이 보통 그릇이 아니었다. 아주 진귀한 그릇을 시골 노인네가 개밥그릇으로 쓰고 있었던 것이었다.
눈이 번쩍 뜨인 골동품 수집업자가 꾀를 내었다. 이런 귀한 그릇이 어디서 났냐는 식으로 수선을 피웠다가는 노인이 그릇을 팔지 않을지도 모르고, 판다 해도 터무니없는 값을 부를 게 뻔해 보였다. 그래서 그는 할아버지의 건강은 어떠신지, 자녀들은 다 출가했는지, 한 해 농사는 잘 되었는지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기회를 보면서 슬쩍 강아지 값을… 물었다.
8만 원 이라고 하자. 그는 집에 들어가실 때, 택시라도 타고 들어가시라 친절을 베풀며 10만 원을 전해드렸다. 기분이 좋아지신 할아버지께 골동품 수집업자가 말했다.
“할아버지, 이 개를 가지고 집에 가려면 먼 길을 가야 하는데, 가다 보면 개가 배가 고플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 개밥그릇 제가 가져가도 되겠지요?”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 기가 막힌 방법으로 진귀한 골동품을 강아지 값에 그냥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할아버지가 껄껄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안 되네, 젊은 양반. 사실은 이 개밥그릇 때문에 이곳에서만 개를 102마리째 팔고 있다오.”
영어 단어 중에 “Serendipity”라는 단어가 있다. “우연한 것, 하찮은 것 속에 감추어진 가치를 찾아내는 능력”이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우리에게 소중한 것과 하찮은 것을 구별할 수 있는 눈과, 하찮은 것으로 보이는 것 속에서도 숨겨진 가치를 찾아내는 눈이 필요하다.
하찮아 보이지만 사실은 소중한 것들이 있다. 중요해 보이지만 실은 보잘것 없는 것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그것을 혼동하며 살아간다.
하찮은 것을 소중한 것으로 여기기도 하고, 소중한 것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우리들의 삶이 의미 있는 삶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우리 삶에 소중한 것인지, 무엇이 하찮은 것인지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하이힐이 단화에게 말했다.
“사람들이 왜 나를 좋아할까?”
“그거야 네가 그녀들을 아름답게 꾸며주기 때문이지”
“그건 모르는 일이야. 너에게만 말해주는 ‘비밀’이 있는데… 사실 그녀들이 나를 좋아할 수록 다리는 기형이 되고, 허리와 관절에도 무리가 오게 돼 있어”
“근데 왜 너를 좋아하는데?”
“그건 아마도 그들이 치루는 대가보다 더한걸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참는걸 거야”
당신이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뤄야 한다. 세상엔 ‘무임승차’란 없다. 그렇게 치뤄야 할 대가는 아무리 치명적이라도 원하는게 강할 수록 견딜 수 있게 만든. 오늘은 무엇을 얻기 위해 어떤 댓가를 치루셨나요?
인도의 열대림에서는 특이한 방법으로 원숭이를 잡는다. 작은 나무 상자 속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견과류를 넣은 뒤, 위쪽에 손을 넣을 정도의 작은 구멍을 뚫어 놓는다. 그러면 견과를 움켜쥔 원숭이는 구멍에서 손을 빼지 못하고 사냥꾼들에게 잡힌다. 손에 들어온 것은 놓지 않는 원숭이의 습성을 이용한 사냥법인 것이다.
원숭이를 비웃을 일이 아니다. 우리도 때때로 똑같은 어리석음을 저지른다. 무언가를 얻으면 놓치지 않으려고 움켜쥔 채 끝내 손을 펴지 않아 나락으로 구르는 경우가 많다. 원하는 것 얻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공짜로 얻으려고 욕심만 채운다면 움켜쥔 손을 펼 수가 없는 법이다.
사람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어떤 대가를 지불하기 전까지는 결코 그 악습에서 놓여나지 못한다. 버려야 될 악한 습관이나 고쳐야 될 자신의 약점을 바꿔라. 바꾸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이라는 대가를 반드시 치루어야 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변명하기 위해서 머리 굴리지 말고 당당하게 대가를 치루어 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