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여성 아나운서 최초로 정년 맞아 "파란만장 30년…러너스 하이 느껴"
출산 이후 뉴스 앵커로 복귀한 최초의 여성 앵커, 최초의 여성 스포츠캐스터, 한국방송대상 작품상 사회 공익부문을 수상한 최초의 아나운서.
'최초'라는 수식어와 함께 30년간 SBS 아나운서로 살아온 유영미 아나운서 부장(59)이 SBS 여성 아나운서 최초로 정년을 맞이하게 됐다.

정년을 앞둔 유 아나운서는 다음 달 8일부터 1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뒤 내년 3월 8일 SBS를 완전하게 떠난다.

그는 최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SBS와의 30년은 파란만장했다.

마침표를 찍게 된 지금 지금은 마라토너가 느낀다는 '러너스 하이 '(runners' high·30분 이상 뛰었을때 밀려오는 행복감) 같은 쾌감을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입사할 때가 기억나요.

어떤 아나운서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당돌하게도 '아나운서 채용 심사위원이 되고 싶다'고 말했거든요.

아나운서는 결혼하거나 애를 낳으면 그만둬야 하는 분위기였는데, 그걸 용납하고 싶지 않아서 더 세게 얘기했던 거 같아요.

(웃음)"
유 아나운서는 기혼 상태로 입사하면서 겪었던 설움도 털어놨다.

그는 "힘들게 회사에 들어왔는데 '결혼한 여자가 회사에 들어왔다'고 미워하는 선배들도 있어 3년 동안 아이를 갖지 않았다"며 "그 뒤에도 임신 9개월 차까지 뉴스 앵커를 했는데 내가 버티고 잘 해내야 후배들도 아무 문제 없이 일할 거란 책임감으로 일했다"고 말했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피겨와 컬링 종목을 중계하며 한국 최초의 여성 스포츠캐스터로 활약했던 그는 "2002년인데 여성 캐스터가 없었다는 말에 모두가 놀랐다"고 회상했다.

"지금은 여자가 스포츠캐스터를 한다는 게 아무것도 아닌데, 그땐 죽기 살기로 했어요.

여자들은 빨리 (직장을) 나간다고 안 시켰거든요.

그 분야는 남자 선배들 거라는 생각 때문에 여자가 하려고 하면 '너네는 금방 그만둘 건데 왜 하냐', '예쁠 때 예쁜 프로그램이나 해라' 하면서 싫어하기도 했죠. 늘 눈물 흘리면서 일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걸 해냈을 때의 성취감은 엄청났어요.

"
여성 아나운서에 대한 편견에 정면으로 맞서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야 했던 그는 "여자 아나운서를 꽃이라고 부르는 게 너무 싫었다"고 털어놨다.

"'왜 우리는 나무나 숲이 될 수 없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일했어요.

제가 입사할 때만 해도 결혼하면 그만둔다는 각서를 쓰고 오는 경우도 있었거든요.

결혼하면 좋은 프로그램에서 빼는 경우도 잦았고요.

매일 씩씩거리고 분노하면서 살았던 기억밖에 없는 것 같아요.

"
힘든 시간 속에서도 30년간 한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데에는 아나운서라는 직업에 대한 유 아나운서만의 깊은 애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나운서라는 직업은 일정부분 사회 공익적인 부분이 있잖아요.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를 세상과 연결해줄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한다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봐요.

현장에서 시작해 현장에서 끝을 맺으니까요.

지금은 마침표를 찍는 최초의 여자 아나운서라는 것에 대한 감사함과 영광이 커요.

은퇴 후 계획은 없어요.

그냥 좀 쉬고 싶어요.

(웃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