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기획전 4일 개막
그림 같은 시·시 같은 그림…'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표현 방식에 따라 분야를 나누지만 모든 예술은 큰 틀에서 하나다.

오래전부터 서로 다른 장르 예술가들이 교류해왔고, 혼란과 격변기에는 그 연대가 더 두드러졌다.

최근 융·복합예술이 주목받고 있지만, 일제강점기와 해방 시기에도 우리나라 화가와 문인들은 이미 글과 그림의 경계를 넘어 어우러졌다.

당시 활동한 정지용·이상·김기림·김광균·이태준·백태원 등 시인과 소설가, 구본웅·김용준·최재덕·이중섭·김환기 등 화가들은 서로 영감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4일 개막하는 새해 첫 기획전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는 1930~50년대를 중심으로 미술인과 문학인이 함께 일군 예술적 토양을 조명한다.

식민지배를 받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 신문화가 빠른 속도로 유입되며 엄청난 충격과 변화를 몰고 왔다.

예술가들은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고자 애썼다.

이상은 1934년 종로에 다방 '제비'를 열었다.

구본웅의 야수파 풍 그림이 걸리고 의자와 탁자가 몇 개 있을 뿐인 초라한 공간이었지만, 예술가들이 모여 뜨겁게 예술에 대한 논쟁을 벌였다.

전시는 먼저 당시 활동했던 예술가들의 실험적 시도와 새로운 도전을 살펴본다.

구본웅, 황술조, 길진섭, 유영국 등은 야수파와 초현실주의, 다다이즘, 추상에 이르기까지 전위적인 양식을 공유하면서 다양한 장르와 이질적 문화가 혼종된 세계관을 구축했다.

이어 1920~40년대 인쇄 미술을 소개한다.

도서관 검색대처럼 꾸며진 전시장은 당시 대중적으로 가장 큰 인기를 누렸던 신문소설의 삽화를 볼 수 있다.

안석영, 노수현, 이상범, 정현웅, 이승만, 김규택 등 시대를 풍미한 삽화가들이 흔적이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각별한 관계였던 문학인과 미술인 조합에도 주목한다.

정지용과 장발, 백석과 정현웅, 김기림과 이여성, 이태준과 김용준 등은 대표적인 문학가-미술인 콤비였다.

이들을 비롯해 끈끈하게 교감을 나눴던 시인과 화가들의 얽히고설킨 관계망을 조명한다.

김용준, 장욱진, 한묵, 박고석, 천경자, 김환기 등 화가로 알려졌지만 문학적 재능도 남달랐던 작가들도 만난다.

김환기는 문학을 공부하려고 일본 유학을 떠났다고 알려졌을 정도로 문학에 심취했던 화가다.

귀국 후 여러 잡지에 삽화를 곁들인 수필을 발표하는 등 글과 그림에 모두 뛰어났다.

시인들과도 가깝게 지낸 김환기는 1970년 김광섭이 죽었다고 잘못 알려진 소식을 접하고 충격을 받아 그의 시구절에서 제목을 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그리기도 했다.

김환기를 대표하는 점화의 완성을 알리는 그림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전시에서는 김환기가 편지나 잡지 등에 그린 손바닥만 한 그림도 볼 수 있다.

문학과 미술이 만난 작품과 서지 자료 등 총 300여 점이 출품된 전시는 그림 같은 시를 쓰고 시 같은 그림을 그린 작가들의 작품이 하루아침에 탄생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5월 30일까지.
그림 같은 시·시 같은 그림…'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