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에 따르면 그의 회사는 직속 상사의 사사로운 기념일까지 챙기며 유독 '패밀리쉽'을 강조했다. 상사의 생일이면 후배들이 삼삼오오 모여 파티를 해주느라 집에 가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말이 좋아 가족 같은 분위기지, 사실상 상사를 향한 대우를 강요하는 불합리한 시스템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상하관계가 뚜렷하다는 특성을 지닌 직업군이라 A씨는 버티고 또 버텼다.
문제는 상사가 개인적인 영역까지 침범했다는 것. 평소 일적인 부분 외에도 외모나 몸매와 관련해 수차례 불쾌한 지적을 해왔던 상사가 A씨의 SNS에 퍽하면 기분 나쁜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음식 사진을 올리면 '이거 먹을 때냐', '그러니까 살이 찌지' 등의 댓글을 남겼다. 숱한 인신 공격에도 댓글을 쉽게 지울 순 없었다. 댓글을 삭제하거나 답글을 달지 않으면 다음날 바로 따지고 들며 응징하려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안 가족들은 화가 나 당장 일을 그만두라고 했지만, A씨의 마음은 복잡했다. 워낙 좁은 업계의 일인지라 안 좋게 퇴사를 하면 재취업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었다. 몇년 간 취직을 위해 고생했던 시간을 생각하면 퇴사하는 게 속상하고 억울하기만 했다. 먼저 그만 둔 신입 직원이 이후 모임에서 내내 조림돌림 당했던 사례가 있어 더욱 두려운 A씨였다.
해당 사연을 접한 네티즌들은 "직업 특성을 방패 삼을 일은 아닌 듯", "이건 갑질도 아닌 괴롭힘이다", "변호사 상담 받고 부디 그 상사 잘라내시길", "가만히 있으면 더 악랄하게 괴롭히니 증거수집 철저히 하고 알려라",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생기고 증거수집해 고발한 사례 있으니 참고하라", "그만두지 말고 악착 같이 증거 모아라", "일을 하다 생기는 실수는 뭐라 할 수 있지만 인격적인 모독은 절대 안 될 일", "더 마음 다치기 전에 직장 내 괴롭힘 신고에 대한 생각을 해보셔야 할 듯", "너무 힘들면 상담도 잊지 마시길" 등의 다양한 의견을 보였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달 22∼26일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 갑질'이 줄어든 것으로 느낀다는 응답 비율은 56.9%로 지난해(39.2%)보다 17.7%포인트 높아졌다. 단 비정규직, 여성, 청년 등의 경우는 직장 내 괴롭힘이 줄어들지 않았다고 느끼는 이들이 더 많았다.
지난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36%였다. 구체적인 괴롭힘 행위로는 모욕·명예훼손이 22%로 가장 많았고, 부당지시(21.3%), 폭행·폭언(13%) 등이 뒤를 이었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을 때의 대응 방법으로는 '참거나 모르는 척했다'가 58.7%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참거나 모르는 척한 이유는 '대응을 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69.9%), '향후 인사 등에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22.4%)로 A씨와 같은 고민이 포함됐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가해자에 대한 확실한 처벌 만큼이나 피해자에 대한 보호 조치가 강화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심리적 불안, 보복에 대한 두려움을 겪는 피해자들을 위한 실질적인 방안 강구와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기업과 사회 전체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실제로 직장갑질119가 공개한 근로감독관의 막말 피해 사례 중에는 '나도 그런 일이 있는데 그럼 나도 괴롭힘이냐', '그게 무슨 괴롭힘이냐' 등 직장 내 갑질 피해를 가볍게 여기는 발언이 포함됐다. 또 '감독관이 얼마나 바쁜지 아느냐', '피해자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괴롭힘 증거를 가져와라', '이런 것을 이용하려는 근로자들이 많다' 등의 발언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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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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