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은 청년 시절 무모한 실험을 했다. 살롱에서 우아하게 즐기던 바이올린 소나타가 재료였다. 세밀한 변주와 극적인 전개, 몰아치는 연주법을 넣었다. 실험은 성공했다. 바이올린 소나타 9번(크로이처) 등 명곡이 쏟아졌다. 하지만 후대 연주자들에겐 난제였다. 피아노로도 연주하기 까다로운 악보를 바이올린 선율로 풀어내야 해서다.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44·왼쪽)과 피아니스트 이진상(39·오른쪽)이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 곡을 음반으로 선보였다. 지난 11일 소니클래식이 발매한 이 음반에는 국내 최초로 바이올린 소나타 전 곡이 담겼다. 백주영은 “국내 최초일 줄 모르고 음반 작업을 시작했다”며 “오래전부터 앨범을 제작하고 싶었지만 마땅한 피아니스트가 없었다”고 했다.

백주영이 고심 끝에 선택한 파트너는 피아니스트 이진상. 두 사람은 지난 7월부터 전 곡을 되짚으며 악보를 분석했다. 연구하는 동안 초심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평소라면 무대에 잘 올리지 않는 레퍼토리를 다시 봤다는 것. 백주영은 “자주 연주하지 않던 바이올린 소나타 10번을 재발견했다. 평소 좋아하지 않던 4번도 연습하며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세 장의 CD로 구성된 이번 음반은 톤마이스터 최진 음악감독이 경남 통영국제음악당을 빌려 3차원(3D) 음향기술로 녹음했다. 듣는 사람이 공간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녹음 기술이다. 최 감독은 “전후좌우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려주는 서라운드에 비해 소리가 한 겹 더 깔려 있는 게 3D 음향”이라며 “미세한 소리를 잡아내다 보니 연주자들이 지난여름 에어컨도 못 켜고 녹음하느라 고생했다”고 했다.

백주영은 1995년부터 시벨리우스 콩쿠르, 파가니니 콩쿠르 등 세계적인 대회에서 입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1998년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에선 3위를 차지했다. 그와 듀오를 이룬 이진상은 2009년 스위스 취리히 게다 안자 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로 우승하며 실력을 입증했다. 두 사람은 지난주 열린 온라인 간담회에서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감상법도 소개했다. 생기를 느끼고 싶다면 바이올린 소나타 1번, 다가오는 봄을 만끽하려면 5번, 마음의 위로가 필요하다면 10번을 들으라는 것. 이진상은 “CD마다 스토리를 녹여냈다. 3막짜리 음악극이라고 생각해도 좋다”며 “역경 속에서 빛났던 예술가 베토벤의 발자취를 따라가면 희망이 보인다”고 말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