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더 나은 반쪽 = 샤론 모알렘 지음, 이규원 옮김. 세계적인 유전학자이자 의사가 왜 생의 모든 단계에서 여성이 더 강한지, 그런데도 왜 우리는 정반대로 믿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20년 넘게 전 세계를 다니며 직접 수행한 연구 끝에 저자는 여성의 유전학적 우월성은 X염색체를 2개 보유한 데서 나온다고 결론을 내린다.
일반적으로 의대에서는 X염색체가 일으키는 다양한 문제에 집중해서 가르치지만, 이는 대개 X염색체가 1개뿐인 남성에게만 해당하는 것이고 X염색체가 2개일 때 이야기는 달라진다.
저자에 따르면 2개의 X염색체는 여성이 위급한 상황에 부닥칠 때마다 유전학적 선택과 세포 협력을 통해 1개의 X염색체보다 탁월한 결과를 도출한다.
X염색체는 남성에게는 색맹이라는 질환을 유발하지만, 여성에게는 1억 가지 이상의 색상을 보는 능력을 부여한다.
자폐스펙트럼을 비롯한 수많은 X-연관 지적장애 역시 남성에게만 편향돼 나타난다.
그러나 2개의 X가 '선택과 협력'을 통해 도출하는 탁월한 결과물에 대해 의학계는 여전히 무지하다.
현대의학이 여전히 남성만을 표준으로 해 수컷동물과 남성의 세포만을 연구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약물시험에서 수컷 쥐만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암컷 쥐가 귀하고 비싸기도 하지만 훨씬 더 강력한 면역계를 가지고 있어서 양쪽 성별에 똑같이 효과적인 감염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더 길고 복잡한 실험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가 겹쳐 여성의 유전학적 우월성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의사 대부분이 여성 환자에게 처방할 약물의 적정 투여량이나 치료법을 강구하기가 어려워진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는 인생을 울트라마라톤에, 남성을 스포츠카에, 여성을 하이브리드카에 비유한다.
단거리 경주에서는 높은 출력의 스포츠카가 유리하지만, 울트라마라톤에서는 연료와 전기라는 선택지를 가지고 오래 갈 수 있는 하이브리드카가 단연 우월한 위치를 점한다는 설명이다.
지식의날개. 280쪽, 1만7천원.
▲ 우리에게는 참지 않을 권리가 있다 = 유새빛 지음. 2019년 7월 16일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위계서열과 성차별이 지배하는 조직문화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여성이 일하기 좋은 회사'라고 알려진 대기업에 입사한 저자는 첫 직장생활의 설렘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말로만 듣던 회식 중 성희롱을 당하게 된다.
너무 당황해 즉각 항의하지는 못했지만, 동료들이 대부분 2차 자리로 옮겨갔을 때 남아있던 상사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털어놓으며 울음을 터트렸다.
뒤늦게 알고 지하철로 귀가하던 저자에게 전화해온 지사장은 "동료들끼리 어깨동무 정도는 할 수 있지"라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가해 당사자와 함께 찾아가겠다는 지사장을 거듭 만류해 귀가하면서 악몽 같았던 하루가 끝났다.
지사로 배치된 지 고작 1주일 만이었다.
그 뒤 이어진 일은 이 땅의 많은 성희롱 피해자가 겪은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직 내 좍 퍼진 소문, 덮고 넘어가려는 상사들, 피해자 입장은 안중에도 없는 이들에 의한 2차 가해. 저자는 그러나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믿음에 기대어 꿋꿋이 문제를 제기했고 100일간의 투쟁 끝에 가해자는 징계를 받고 자신은 새로운 부서로 이동하는 것으로 사태는 정리된다.
저자는 "조직이 나를 보호해주지 못하고 근로환경에서 불평등과 차별을 겪는다면 직접 스스로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고 썼다.
21세기북스. 248쪽. 1만7천원.
▲ 코로나 시대의 페미니즘 = 김은실 엮음. 전작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에 이은 '페미니스트 크리틱'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요구하는 코로나 19가 신자유주의와 포개지며 페미니즘에 던진 곤란한 질문, 즉 '지금 같은 시대에 경계를 넘는 연대가 가능하겠는가'라는 질문에 13명의 페미니스트가 각자의 입장에서 해답을 구한다.
올해 초 트랜스젠더 여성이 여자대학에 합격한 것을 계기로 제기된 '누가 진짜 여성인가'라는 논쟁과 관련해 여성학자 김은실은 "생물학적 여성은 결코 여성 연대의 기초가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지금까지 페미니즘은 여성을 생물학적으로 규정하는 지식과 담론에 반대하면서 여성의 주체성을 고양해 왔기 때문이다.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권김현영은 "페미니즘이 여성을 피해자로만 여기는 고정관념과 싸워 왔다"고 이야기한다.
'피해'를 싸움의 중심에 놓으면 그것을 자원으로 삼아 누가 더 고통받는가를 경쟁하는 구도에 매몰되고 만다는 것이다.
문화평론가 손희정은 "페미니즘은 억압받는 이의 편에 서는 것이지만, 억압받는 이의 다양성을 함께 생각해야 '아무도 짓밟지 않는 운동'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밖에 코로나 19가 연 재난의 시대를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조명하고 '파이'와 '안전'에 얽매인 여성의 현재를 톺아보며 새로운 사회를 위한 페미니스트 전략을 모색하는 글들을 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