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과 물질주의 고발한 SF문학의 영원한 원전

체코 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하나로 꼽히는 카렐 차페크는 '로봇'이란 단어를 창조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1921년 체코 수도 프라하에서 초연한 연극 '로봇'의 대본인 'R.U.R.'에서 로봇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다.

이 희곡은 1920년에 쓴 작품으로 '로봇'이란 말이 탄생한 지 꼭 100년이 됐다.

도서출판 이음은 이를 기념해 이 작품을 차페크 전문가인 유선비 한국외국어대 교수 번역으로 펴냈다.

완역판 'R.U.R.-로줌 유니버설 로봇'이다.

인간의 편리를 위해 대량 생산한 로봇에 의해 인간이 멸종한다는 암울한 디스토피아 미래를 그려낸 희곡으로, 이후 공상과학소설(SF)의 전범으로 남았다.

이런 이야기 구조를 통해 인간의 이기주의, 집단주의, 호전성을 고발하고 철학적으로 사유한다.

사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로봇은 현재 활용되는 로봇을 넘어 HBO의 인기 드라마 '웨스트 월드'에 나오는 인공지능(AI) 안드로이드에 가깝다.

그냥 기계 덩어리가 아니라 생화학적 공정을 거쳐 만들어냄으로써 성분만 진짜 인간과 다를 뿐 외관상 구별이 불가능한 '인조인간'이다 .
사실 로봇은 인간에게서 쓸 데 없다고 생각한 감정과 고통만 제거해 산업 노동과 대량 생산에 적합하게 만든 피조물이었다.

그래서 이 희곡은 인간의 이기심과 집단주의를 고발하는 내용이 된다.

차페크는 수많은 로봇이 물건을 만들어내고 결국 반란까지 일으키는 모습을 통해 전쟁 직후 파시즘과 물질주의가 지배한 당시 유럽의 암울한 분위기와 맹목적 집단주의가 주는 공포감을 표현하려 한 것이다.

차페크가 뛰어난 점은 '진보'의 위험성과 물질주의의 폐해를 이미 100년 전 간파했다는 점이다.

인간성 대신 물성에 기반을 두는 집단적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진보는 결국 인류의 파멸을 몰고 올 것이라는 사실을 차페크는 '로봇'이라는 세련된 은유로 경고한 셈이다.

철학 박사인 차페크는 체코를 대표하는 일간지 '리도베 노비니'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문단에서도 철학적이고 날카로운 작품들로 꾸준히 활동한 국민 작가다.

소설 '압솔루트노 공장', '도롱뇽과의 전쟁', '호르두발', '별똥별', '첫번째 구조대', '하얀역병' 등 작품을 통해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고발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