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대학 입시 결과가 발표되는 연말연시가 되면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명문대에 합격한 '흙수저' 수험생들의 미담이 소개되곤 한다.
미국 아이다호주 산골 출신 타라 웨스트오버가 쓴 '배움의 발견'(원제 Educated·열린책들)은 '역경 속에서 이룬 성취'라는 점에서는 이 땅의 흔한 입시 성공담과 비슷하지만 다른 면에서 본다면 한국의 평균적인 또래 청년들이 상상조차 못 했을 법한 인생의 난관을 이야기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열여섯 살까지 학교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저자 타라는 거의 독학으로 대학입시를 준비해 1년 만에 미국 유타주 브리검 영 대학에 입학해 최우등으로 졸업했고 여세를 몰아 세계 최고 명문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내내 장학금을 받아 가며 공부해 28세로 박사 학위를 받게 된다.
그러나 그의 이력에는 한국의 '개천에서 용 나기' 스토리에 대부분 포함되는 요소들이 빠졌다.
가난하기는 하지만 그의 성공을 염원하고 격려를 아끼지 않는 부모를 비롯한 가족, 일찌감치 그의 재능과 성실성을 알아보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 선생, 그리고 이 모든 이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어려움 속에서도 이를 악무는 본인 말이다.

독실한 모르몬교 신자로서 정부와 병원, 교육 시스템을 사탄 또는 사회주의자 기구라고 불신한 아버지는 자식들이 아무리 아파도 병원에 보내지 않고 출생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타라가 언제 태어났는지는 가족 누구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아버지가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홈스쿨링'을 한다지만 집에서 가르치는 것은 성경과 모르몬 경전 정도가 고작이었다.
곧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이라고 믿는 아버지의 주된 관심사는 세상이 혼돈에 빠질 그때를 대비해 피난처를 마련하고 그곳에 식량과 연료 등 생존에 필요한 물품을 채워 넣는 것이었다.
언젠가 사회주의자들과 사탄의 사주를 받은 정부가 가족을 공격할 수 있다고 보고 총기와 탄약을 준비하는 데도 열심이었다.

힘든 것은 물론이고 위험하기도 했다.
아버지와 타라, 형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고철더미에서 추락하거나 연료가 남은 폐차 엔진이 폭발하는 사고로 목숨을 잃을 뻔한 일이 여러 차례 있었다.
한번 눈보라가 몰아치면 천지가 분간되지 않는 혹독한 겨울길을 무모하게 운전하다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말에서 떨어져 가족 전부 또는 일부가 목숨을 잃을 뻔한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타라에게 즐거운 일은 별로 없었다.
치마 끝에 종아리만 보이더라도 "창녀 같은 옷차림"이라고 치를 떠는 아버지의 분노는 뒷날 알게 된 것이지만 종교적 확신 못지않게 정신적 불안정 탓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성격을 물려받은 오빠 션은 화가 나면 타라의 팔을 등 뒤로 꺾고 얼굴을 변기에 처박는 폭력을 행사했다.
어린 나이에 인생의 비참함을 너무 많이 알게 된 타라는 이 집과 가족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뿐임을 깨닫게 된다.
먼저 대학에 입학한 또 다른 오빠 타일러 도움으로 미국 대학입학시험(ACT)을 준비해 우여곡절 끝에 들어간 곳은 학생 대부분이 모르몬 교도인 브리검 영 대학이었다.
스스로 '기적'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ACT 점수를 잘 받기는 했지만 기초 학력이 없는 타라가 대학 수업에 어려움을 겪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소설 '레미제라블'을 읽고는 나폴레옹과 장 발장 가운데 누가 실재했던 인물이고 누가 허구의 인물인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수업 중에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라는 낯선 말을 접하고 교수에게 그게 무엇이냐는 질문을 했다가 동료 학생으로부터 "그런 일로 농담을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핀잔을 듣고는 그 학기 내내 다시는 교수에게 질문하느라 손을 들지 않았다.
학업의 어려움과 함께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돈 문제까지 겹쳐 몇 번이나 학교를 포기할까 생각했지만 담당 교수와 교내 비숍(모르몬 성직자) 등 학교 당국자들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타라는 장학금이나 정부의 지원금이 사탄의 유혹이라거나 병원에서 항생제를 맞으면 서서히 죽어갈 수밖에 없다는 아버지, 어머니의 가르침이 잘못임을 깨우치게 된다.
이 상황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고 마침내 교수 추천으로 케임브리지대학 대학원에 장학생으로 진학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공부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던 상황과 지금의 처지를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함 이외에도 지능이 탁월했다고 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아이다호 산골짜기 집과 농장, 산과 들, 폐철처리장이 아는 세계의 전부였던 소녀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역사학 박사가 됐다.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서 마무리되는 해피엔딩이 아니다.
타라는 가족들 앞에서 션 오빠의 폭력을 폭로하고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받은 많은 가르침이 옳지 않았음을 선언하지만 종교적 확신을 가진 부모와 나머지 가족 대부분은 타라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 사이에 폭발사고를 당해 심각한 장애를 안게 된 아버지는 타라와의 관계를 단절하게 됐고 이 책을 마무리하는 시점까지 그 관계는 회복되지 않는다.
마지막 페이지에 타라는 "나와 아버지를 가르고 있는 것은 시간과 거리만이 아니다.
그것은 변화된 자아다.
나는 아버지가 기른 그 아이가 아니지만 아버지는 그 아이를 기른 아버지다"라고 썼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바꾼 열여섯 이후의 결정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것들은 변화한 사람, 새로운 자아가 내린 결정들이었다.
이 자아는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 부른다.
"
타라의 인생 이야기는 어떤 소설보다 극적이지만 결론은 그다지 '소설적'이지 않다.
인생이란 소설처럼 어느 시점에 덮고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0년, 아니면 20년 뒤가 될지 모르지만 타라의 그 뒤 인생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김희정 옮김. 520면. 1만8천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