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에 도전한 '어설픈 반항아'…마지막 10대 연기 같아서 소중"
“멜로 연기 탈피요? 굳이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어요. 여러 작품에 도전해야 하니까요.”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봄밤’(2019),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등을 통해 ‘멜로 장인’의 이미지가 각인된 배우 정해인(31·사진)이 오는 18일 개봉하는 영화 ‘시동(始動)’에서 반항아 연기를 펼쳤다. 영화는 어설픈 반항아들인 상필(정해인 분)과 택일(박정민 분)이 무시무시한 세상살이를 시작하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려냈다. 정해인은 치매 걸린 할머니와 단둘이 살며 빨리 돈을 벌고 싶어 사채업자 하수인으로 일하는 상필 역을 해냈다.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결핍 있는 인물들이 서로 기대고 도와주는 이야기예요.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따뜻한 영화죠. 관객들은 기분 좋게 극장 문을 나설 수 있을 겁니다.”

정해인은 영화 ‘시동’을 이렇게 소개했다. 상상도 못한 거친 세상에서 인생의 쓴맛을 보는 상필 역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상필이는 어설픈 반항아예요. 담배도 피우고 욕도 하지만, 어색하죠. 감독님도 ‘애처럼 보이면 좋겠다’고 했어요. 담배 피우는 장면에서는 좀 힘들었어요. 제가 원래 담배를 안 피우거든요. 담배를 계속 피우니까 머리가 핑 돌더라고요.”

그는 사채업에 몸담은 배역을 맡으면서 검은색 옷이나 가죽옷 등 강해 보이는 의상을 입었다. 거친 남자처럼 보이는 이미지를 만들려고 했다. “‘봄밤’에서는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싱글대디 역이었죠. 갇혀 있어 뻗어 나갈 수 없던 캐릭터였습니다. 하지만 상필은 의욕이 앞서고 뭐든 시도해볼 수 있는 인물이란 점이 다르죠.”

정해인은 상필이 실제 자신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고 했다. “학창 시절 저는 부모님 말씀을 잘 들었어요. 반항해 본 적이 없었어요. 어중간한 학생이었죠. 특출나게 잘하는 것도 없고, 친구들 하는 것 따라 하고요. 공부를 확실하게 한 것도 아니고 놀 때 확실하게 논 것도 아니고요. 졸업 사진에는 제가 빨간 뿔테 안경을 쓰고 있는데, 당시 그런 색깔 있는 테가 유행했거든요. ”

극 중 상필과 택일은 마주친 문제들을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풀어낸다. 마동석이 연기한 중식당 주방장은 조력자이자 멘토다. “‘시동’은 한마디로 책임감에 대한 이야기죠. ‘똥 눴으면 니가 닦아’라는 대사처럼 자기 일에 스스로 책임을 지라고 요구합니다.” 그는 “10대 연기는 (이번 작품이) 마지막일 것 같다”며 “앞으로 작품에서 보여드릴 이미지들은 점점 청소년과는 멀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곧 내년에 방영될 드라마 ‘반의 반’ 촬영도 시작한다. 새 드라마에서 프로그래머 역할을 맡은 그는 “지금 내 나이대에 보여드릴 수 있는 것을 극대화해서 보여드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를 기점으로 주변 환경이 많이 달라졌어요. 사실 저는 그대로인데도요. 그래서 제가 작품을 선택한다는 말이 아직 낯설어요. 감정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연기 일을 오래 하고 싶습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