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 기지 정화 비용은 “1100여억원”
정부는 이날 원주의 캠프 이글과 캠프 롱, 부평의 캠프 마켓, 동두천의 캠프 호비 쉐아사격장 등 4개 미군기지의 환수를 결정하며 △오염 정화 책임 △주한미군이 사용 중인 기지의 환경관리 강화 방안 △한국 측이 제안하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관련 문서의 개정 가능성에 대해 협의를 지속한다는 세 개 조건을 내걸었다.
4개 미군기지는 2010~2011년 환수 절차가 시작됐지만 그동안 정화 책임과 비용 부담을 두고 한·미 양측이 의견차를 좁히지 못해 환수가 미뤄져온 곳이다. 정부가 국내법을 기준으로 환경조사를 해 추산한 결과 각각의 기지에 들어갈 정화 비용은 캠프 마켓이 848억원, 캠프 롱이 200억원, 캠프 이글이 20억원이었다. 일각에선 미환수 22개 미군기지의 환경 정화 비용이 최대 1조50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추산도 나온다. 정부는 이번 결정에 대해 “반환 지연에 따른 오염 확산 가능성과 개발계획 차질로 경제적·사회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해당 지역에서 조기 반환 요청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며 “한·미 양측 모두 이에 공감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미 양국은 또 지지부진했던 용산 미군기지의 환수 절차 협의도 시작했다. 용산 미군기지 일대는 2005년 발표된 용산공원 조성계획과 맞물려 개발 기대가 큰 곳이다. 용산구청에 따르면 243만㎡에 달하는 기지 부지에 용산공원 조성과 더불어 국제업무단지 조성, 서울역~영등포 경부선 구간 지하화, 한남재정비사업 등이 이뤄질 예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2005년 발표된 용산공원 조성 계획이 과도하게 지연되지 않도록 용산 기지 반환 절차를 조속히 밟을 것”이라며 “다만 구체적인 반환 시점을 언급하기엔 이르다”고 했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 지렛대’ 될까
일각에서는 정부의 이번 결정을 두고 현실을 고려한 ‘고육지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으로부터 환경 정화 비용을 받아낼 가능성이 적은 상황에서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라도 활용할 목적으로 내린 결정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미국 측이 환경오염 책임 및 정화 비용 문제와 관련해 ‘협의하겠다’고 한 것 자체가 전향적이란 평가를 내리고 있지만 앞으로의 일정은 기약이 없다. 한·미는 2003년 전국 미군기지의 이전 사업에 합의했지만 현재까지 80개 기지 중 22곳이 미환수 상태다. 기지 반환 과정에서 미국이 환경 정화 비용을 부담한 적은 한 차례도 없다. 미 정부는 공공안전 및 인간건강, 자연환경에 급박한 위험이 있는 오염이 발생했을 경우 외엔 미 정부가 토양오염 정화 비용을 내지 않는다는 ‘KISE 원칙’을 고수해왔다. 아직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미군기지 환경 정화 비용을 부담한 전례가 없다.
이번 결정을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협상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는 무관하게 결정된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미국은 방위비 협상에서 기존 SMA 틀을 벗어나 주한미군 운용 비용뿐만 아니라 전략자산 전개 비용까지 요구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환경 정화 비용 부담을 협상카드로 못 쓸 이유가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정부 관계자 사이에서도 방위비 분담금을 무기 구매 등과 연계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적잖다. 케빈 페이히 미국 국방부 조달담당 차관보는 10일(현지시간)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주최한 한·미 동맹 콘퍼런스에 참석해 한국이 상당한 규모로 미국산 무기를 사들이는 것과 한·미 방위비 협상의 연계 가능성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늘 합의를 추구하는 협상가”라며 “그가 그런 기회들에 귀를 기울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