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비극’은 벨기에 출신의 유명 연출가 이보 반 호프의 대표작이다. 2007년 초연 이후 20여 개 도시에서 공연됐다. 연극은 세 가지 이야기로 구성된다. 셰익스피어가 로마를 배경으로 쓴 세 편의 희곡 <코리올라누스> <줄리어스 시저> <안토니&클레오파트라>가 연이어 무대화된다. 각 작품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암투를 펼친 고대 로마 인물을 다룬다.
공연 시간이 5시간30분에 달한다. 이 길고 긴 시간에 관객은 무대 중앙에 있는 작은 유리 칸막이 사이를 제외하고는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객석에 그냥 앉아 있어도 되고, 무대에 있어도 된다. 심지어 배우들이 연기를 하고 있을 때도 마음대로 오갈 수 있다. 공연장 밖에서 연극을 무대 모니터로 관람해도 된다. 무대 위 한편에서는 핫도그와 쿠키, 주스 등 각종 식음료를 판매한다. 무대에서 구입해 음식을 먹고 마시며 극을 볼 수 있다. 로마의 역사적 현장을 기록하듯, 공연 현장을 바로 카메라로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려도 된다. 낯설고 파격적인 설정이지만 관객들은 쭈뼛대지 않고 마음껏 즐겼다. 무대 위로 올라가도 된다는 안내 멘트가 나오자마자 100명이 넘는 관객들이 무대로 향했다. 이후 장면 전환 알림이 나올 때마다 관객들은 대거 이동했다. 무대에는 평균 100여 명이 머물렀다.
극은 고대 로마를 다루면서도 현대 사회를 정조준한다. 배우들은 모두 우리가 현재 입는 양복이나 평상복을 입고 있다. 무대 상단에 있는 커다란 스크린과 무대 곳곳에 배치된 모니터는 이들 모습을 다양한 각도로 비춘다. 오늘날 정치인들의 논쟁과 몸싸움을 생중계하는 느낌을 준다. 실제로 현대의 TV 뉴스를 모티브로 한 장면도 나온다. 뉴스 앵커가 코리올라누스를 도와주는 적국의 장군을 인터뷰하는 설정이다. 관객들은 시간을 뛰어넘는 묘한 설정에 웃음을 터뜨렸다.
장면마다 쏟아지는 방대한 대사도 인상적이다. ‘말의 향연’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대사 분량이 압도적이다. 다른 공연에 비해 배우들이 극에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이라 ‘잘 해낼 수 있을까’하는 노파심이 들기도 했다. 관객들이 무대를 빼곡히 채우고 있어 감정을 잡는 것은 물론 동선을 확보하는 일조차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배우들은 잘 훈련된 듯 대사 처리부터 눈물 연기까지 능숙하게 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