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울 수도 없고, 딸 수도 없고, 주울 수도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
8일 오전 전남 순천시 낙안면 신기마을의 배 과수원에서 만난 김근철(53)씨는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올해는 여름을 무사히 넘기나 싶었지만, 가을장마가 이어지더니 제13호 태풍 '링링'이 찾아왔다.
봄에는 냉해에 시달렸고, 수확할 시기가 다가오자 10일 이상 이어진 장마로 배 알이 작았는데, 이번 태풍에 속절없이 떨어지고 말았다.
김씨는 성장 촉진제 등 농약을 치지 않고 배를 키워 다른 배보다 수확 시기도 한 달가량 늦어 피해가 더 컸다.
과수원에는 애지중지 키웠던 배가 노란 껍질을 드러낸 채 썩어가고 있었다.
김씨처럼 낙과 피해를 본 농가만 이 마을만 28개 농가.
마을은 평온해 보였지만, 태풍 '링링'이 남긴 상처가 곳곳에 남아있었다.
가지마다 가득 열린 단감은 부러진 채 위태롭게 나무에 매달려 있었고, 유자와 사과 대추도 바닥에 뒹굴었다.
방목해 키우는 닭들만 주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배 속살을 쪼아 먹고 있었다.

그는 이어 "떨어진 배는 이미 상품성을 잃어 거름으로밖에 쓸 수 없다"며 "나무에 달린 성한 배도 조그만 상처만 있으면 제값을 받지 못해 항상 답답하다"고 말했다.
강선배 낙안배영농조합법인 상무이사는 "낙안면에서만 180개 농가 가운데 50% 이상이 낙과 피해를 봤다"며 "가을장마로 수확 시기를 놓친 데다 올 추석은 여느 해보다 빨라 더 피해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낙안면에서는 이번 태풍으로 배와 사과 낙과 피해 말고도 논 10ha가 도복 피해를 봤다.
시설 하우스도 1개 동이 전파되고 8개 동이 반파되는 등 곳곳에서 피해가 잇따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