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분이 침투하지 못하는 긴 로프 형태의 이 단백질 소섬유가 알츠하이머병 치료의 중요한 실마리가 될 거라는 기대가 높지만, 아직 치료제 개발 연구에서 이렇다 할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뇌 신경세포(뉴런) 주변에 쌓인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변형해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키는 세부 메커니즘을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과학자들이 밝혀냈다.
이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 가운데 하나가 심하게 뒤틀리면서, 수분 침투를 차단하는 '분자 지퍼(molecular zipper)'가 추가로 생기면 단백질 소섬유가 급증해 알츠하이머병으로 진행한다는 게 요지다.
이번 연구를 수행한 UCLA의 스티븐 클라크 생화학 교수팀은 최근 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관련 보고서를 발표했다.
저명한 생화학자인 클라크 교수는 현재 이 대학의 분자 생물학 연구소장이며, 1990년부터 뇌와 알츠하이머병을 연구해 왔다.
19일(현지시간) 온라인에 공개된 연구 개요(링크 [https://www.eurekalert.org/pub_releases/2019-08/uoc--bdn081919.php])에 따르면 클라크 교수팀은 이번에 두 가지 버전의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존재한다는 걸 확인했다.
하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해롭지 않은 정상 버전이고, 다른 하나는 노화 손상이 생긴 유해한 버전이다.
노화로 변형된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두 번째 '분자 지퍼'를 갖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 소섬유는 이 분자 지퍼로 단단히 싸여 수분이 침투하지 못한다.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 소섬유에 '지퍼의 이(teeth of a zipper)'처럼 작용하는 단백질이 존재한다는 건, UCLA의 데이비드 아이젠버그 교수팀이 2005년 발견해 저널 '네이처(Nature)'에 발표했다.
아이젠버그 교수팀은 당시 파킨슨병 등 20여 종의 신경 퇴행성 질환뿐 아니라 알츠하이머병에서 형성되는 소섬유에도 이 분자 지퍼가 존재한다는 가설을 제기했다.
클라크 교수팀의 이번 발견은 14년 전에 제기된 동료 과학자들의 가설을 뒷받침한다.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은 대부분 40개 또는 42개의 아미노산이 목걸이처럼 연결된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23번째 아미노산이, 뒤엉킨 정원용 호스처럼 뒤틀릴 수 있는데, 이런 형태를 'isoAsp23'라고 지칭한다고 한다.
이렇게 아미노산이 뒤틀린 베타 아밀로이드는 정상 단백질과 달리 두 번째 '분자 지퍼'를 갖고 있다는 게 새로이 확인됐다.
보고서의 제1 저자인 레베카 워맥 박사과정 연구원은 "이번 연구를 통해 두 번째 방수 지퍼가 형성될 수 있다는 건 알아냈지만 그 지퍼를 어떻게 여는지는 아직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정상적인 베타 아밀로이드엔 이런 분자 지퍼의 형성을 차단하는 6개의 물 분자가 붙어 있지만, 23번째 아미노산이 뒤틀리면 물 분자가 모두 떨어져 나가 두 번째 지퍼가 생기는 걸 막지 못한다고 연구팀은 설명한다.
클라크 교수는 "아미노산의 구조가 뒤틀리면 알츠하이머병 발병과 연관된 베타 아밀로이드 소섬유가 더 빨리 늘어난다"면서 "일단 두 번째 분자 지퍼가 생기고 단백질 소섬유가 형성되기 시작하면 이를 멈출 방법은 없다"고 설명했다.
유독 23번째 아미노산이 뒤틀리는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단백질을 수리하는 효소가 제대로 작용하지 못한 결과가 누적된 것이라는 추론이 제기됐다.
사실 아미노산이 뒤틀리는 현상은 평생 아무 때나 생길 수 있지만, 그럴 때마다 수리하는 효소가 작용해 문제를 해결한다고 한다.
그러나 60세 이상 고령자가 되면 이 효소가 수리를 빠뜨린 변형 아미노산이 쌓여 뇌 신경 조직 전체에 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클라크 교수는 "다행히 무엇이 문제라는 걸 이제 알았다"라면서 "뒤틀린 아미노산부터 중점적으로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개발에 새로운 접근로를 열 것으로 기대된다.
아미노산의 뒤틀림을 차단하거나, 단백질 수리 효소의 작용을 대폭 강화하는 방법이 먼저 거론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