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안고 윗몸 일으키기 하며 체력 회복했죠"

"출산휴가 마치고 처음 출근하던 날, 아기를 떼어놓고 나오는데 눈물이 주르륵 났어요.

"
앳된 얼굴에 복잡한 표정이 스쳤다.

2005년 국립발레단 입단시험에서 90대 1 경쟁을 뚫고 유일한 정단원으로 발탁된 소녀가, 이제는 어엿한 엄마가 됐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리회(32) 이야기다.

김리회는 다음 달 28일부터 9월 1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제180회 정기공연 '백조의 호수'에 오데트-오딜 역으로 선다.

이번 공연은 지난 1월 출산한 김리회의 복귀 무대이기도 하다.

22일 예술의전당 연습동에서 그를 만났다.

몸으로 표현해야 하는 무용수에게 임신과 출산이 쉬운 일이었을 리 없다.

김리회는 스물여섯 살이던 2013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동문인 배우 겸 사업가 강도한과 결혼했다.

임신은 차일피일 미뤘다.

그러다 지난해 5월, 지방공연을 마치고 건강검진 과정에서 임신 사실을 알았다.

"진짜 임신인가? 실감이 안 났어요.

정말 행복한데 무용을 당분간 못한다는 생각에 힘들었어요.

다섯살에 발레를 시작해서 한순간도 쉬어본 적이 없거든요.

무용수는 아침부터 밤까지 거울에 몸을 비춰보는 게 일인데, 살이 붙어가는 제 모습이 싫은 거예요.

그러다 '언제 내가 이래 보겠어?'라는 생각에 맘 놓고 먹었어요.

12㎏이 쪘네요.

(웃음)"
아홉 달 임신 과정은 비교적 순조롭게 지나갔지만, 진짜 전쟁은 출산 직후 시작됐다.

밥 먹듯 하던 윗몸일으키기가 안 되고, 물병을 집어들 힘조차 없었다.

평생 섬세하게 근육을 단련한 무용수로서 처음 겪는 몸의 변화였다.

그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내 몸이 아닌 것 같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극복 과정은 쉽지 않았다.

혼자일 때야 체력이 떨어지면 회복에만 집중하면 됐지만, 이제는 아기도 챙겨야 했다.

발레를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몸과 마음을 다잡았다.

"아기를 봐야 하기 때문에 예전만큼 제시간이 없잖아요.

그래서 아기를 안고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플리에(무릎을 깊숙이 숙이는 발레 동작)를 했어요.

시간은 없고, 아기는 안아주고 싶으니까요.

그렇게 하니까 하루하루 몸이 조금씩 달라졌어요.

첫날은 하나 되던 윗몸일으키기가 이튿날은 한 개 반, 두 개…."
김리회는 아기가 태어난 지 딱 100일 되던 날, 국립발레단으로 다시 출근했다.

직접 이유식을 만들어 쟁여두고 손을 흔들며 나왔다.

그날 차창 밖으로 보이던 풍경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의 어깨에는 묵직한 책임감이 얹어져 있었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가 출산하고 무대에 복귀한 사례가 많지 않아요.

사실 해외에는 워킹맘 무용수가 많거든요.

그래서 요즘 후배들이 제게 고민 상담을 많이 해요.

저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빨리 결혼하길 '강추'해요.

출산도요.

힘든 만큼 얻는 게 있거든요.

그동안은 발레 속에서 희로애락을 배웠는데, 아기를 낳고 보니 삶 속에서 배우는 희로애락이 있더라고요.

그 두 가지가 합쳐졌을 때 예술가로서 표현력도 강해지는 것 같아요.

"
복귀작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김리회에게 '백조의 호수'만큼 특별한 작품이 있을까.

초등학생 때 최초로 관람한 발레 공연이 이것이었고, '발레의 교과서'라 불리는 만큼 더 잘하고 싶은 애증의 작품이었다.

복귀 무대로 만난 게 운명 같다고 했다.

"강수진 단장님께서 이 기회를 주실 줄 몰랐어요.

저를 믿고 기회를 주신 거니 정말 감사해요.

"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공연. 김리회는 기다려준 관객들에게 다음과 같은 인사를 남겼다.

"그전보다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는데, 물론 부족한 점도 있을 거예요.

엄마 김리회도 좋지만 이번에는 발레리나 김리회도 함께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