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10월 한국 최초의 여성 병원인 보구여관(普救女館)은 몰려드는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갓 귀국한 한국 최초의 여성 의사 박에스더를 보기 위해서였다. 의료선교사 스크랜턴이 1887년 세운 보구여관은 박에스더가 합류하기 전까지는 해외에서 선교활동을 하러 온 외국인 여의사들이 진료를 해왔다.

박에스더는 1876년 3월 16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김점동이다. 이후 세례명 에스더와 남편 박유산의 성을 따라 박에스더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이화학당을 다니며 영어를 배운 그는 보구여관에서 의사들의 통역을 담당했다. 의사를 보조하고 환자를 간호하는 역할까지 했다.

1895년 남편과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보구여관에서 일할 때 그를 눈여겨본 의료선교사 로제타 홀이 유학을 제안했다. 1896년 볼티모어여자의과대학에 입학했다. 남편은 아내의 재능이 자신보다 낫다는 사실을 알고 일을 하며 뒷바라지했다. 하지만 1900년 농장에서 힘든 일을 하다 폐질환에 걸려 박에스더의 졸업시험을 석 달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졸업하자마자 한국으로 돌아온 박에스더는 보구여관에서 환자들을 진료했다. 연간 수천 명의 환자를 쉬는 날도 없이 돌봤고, 전국으로 당나귀를 타고 진료하러 다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돌보지 않고 일하던 그는 1910년 34세의 나이에 폐결핵과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났다.

홍윤정 기자 yj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