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의 그리스 비극읽기 (34) 미몽(迷夢)
미몽과 오만
배경과 환경이 습관으로 굳어져…자신만의 색안경 끼고 세상 이해
주위의 충고에도 버리지 못해
그리스 비극공연
1인칭의 눈으로 세상 보지 않고 제3자의 눈으로 살펴보는 연습
'방패를 든 아이아스'
트로이에서 약탈해 온 가축과 이를 지키던 사람들 살해
피투성이가 된 채 막사로 복귀
색안경
나는 내 두 눈을 통해 내가 이해하고 있는 세계 안으로 매일 만나는 대상을 강제로 끌어당긴다. 그 대상이 지니고 있는 내적인 통일성과 진정성을 인식하기 위해선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 나는 세상을 왜곡된 시선으로 보고 있다고 인식하고 고백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인 어제까지의 시선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남들은 모두 내가 색안경을 착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의 배경과 환경이 나의 습관과 익숙함이 돼 나 자신은 색안경을 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기원전 5세기에 등장한 그리스 비극 공연의 가장 큰 목적은 디오니소스 축제에 앉아 비극 공연을 보고 있는 아테네인들에게 세상을 자신의 눈, 즉 1인칭의 눈으로 쳐다보지 말고 옆에 앉아 있는 남편의 눈, 아내의 눈, 자식의 눈으로 볼 뿐만 아니라 가장 비극적인 인간, 원수의 눈, 적군의 눈, 즉 3인칭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고 촉구한다. 영화, 연극, 방송, 신문을 포함한 엔터테인먼트는 제3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연습이다. 나의 눈에서 색안경을 벗겨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미몽(迷夢)’에 시달린다.
미몽
자신의 눈이 공명정대하며, 자신의 말은 객관적이고 옳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오만(傲慢)’이다. 주위 사람들은 그가 오만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들이 그에게 그 오만의 색안경을 벗으라고 충고하지만 소용없다. 그 자신만 이 색안경을 착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한밤중에 착용한 색안경처럼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찾지 못하고 엉뚱한 길로 들어서는 것과 같다. 혹은 가로등이 없는 한밤중에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켜지 않고 운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색안경을 착용해 자신에게 다가오는 위험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미몽이다. 미몽이란 수천 개 쌀알에서 낱알 하나하나를 구분해서 보려는 시도다. 한 알과 다른 알을 구분하기 쉽지 않아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태다. 미몽은 또한 한밤중에 자신이 가려는 길을 더듬는 어리석음이다. 사고는 반드시 일어난다.
오만은 인간의 시계를 어둡게 해 자신이 가야 할 길, 해야 할 일, 말해야 할 내용을 어수선하게 한다. 한마디로 미몽에 빠져들게 한다. 미몽과 과학적 혹은 철학적인 이성이나 깨달음과의 근본적인 차이는 이것이다. 미몽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배제한 확신이다. 혹은 실제로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진리라고 착각하는 마음이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아이아스》는 영웅 아이아스의 미몽 사건으로 시작한다.
언제나
그리스인들은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에도 트로이 해안에 진(陣)을 치고 쉬고 있다. 트로이 전쟁을 기록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보면, 그리스인들은 함선을 해안에 올려놓고 가장 위험하면서도 가장 명예로운 가장자리에 그리스 연합군의 두 영웅 오디세우스와 아이아스의 진영을 꾸렸다.
비극은 오디세우스가 이른 아침에 해안가에서 핏자국을 발견하고 살피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 핏자국은 오디세우스의 경쟁자인 아이아스의 막사를 향하고 있다. 무대에는 아이아스 진영을 묘사하는 나무로 만든 건물이 있다. 이때 아테나 여신이 기계장치를 타고 공중에 나타나 신들이 나와 이야기하는 장소인 ‘테오로게이온(theologeion)’에서 오디세우스에게 말을 건다. “언제나! 라에르테스의 아들이여! 나는 네가 너의 적들을 공격하는 데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이처럼 동분서주하는 것을 분명히 봤다.”(1~2행)
소포클레스는 비극 《아이아스》를 시간의 영속성과 영원함을 나타내는 그리스어 부사 ‘아에이(aei)’로 시작한다. 아에이는 ‘항상, 늘’이라는 부사로 ‘분명히 보다’라는 동사를 꾸민다. 이 단어는 후에 아이아스가 아테나 여신에게 호의를 부탁할 때 다시 사용한다.(117, 342, 570행)
제우스의 딸인 아테나는 전쟁과 직조의 여신이며,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의 주신이다. 연극은 ‘시간’의 두 가지 성격에 관한 주제를 다룬다. 아테나 여신으로 상징되는 신들에게 시간은 영원하며 반복적이다. 시간은 영원한 회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인간에게 시간은 순간이며 단선적이다. 인간에게 시간은 매정하다. 한 번 지나가면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신비한 그 무엇이다. 신들은 하늘 위에서 영생을 누리며 반복되는 시간을 관찰한다. 그러나 인간은 매 순간이 첫 경험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막막하다. 인간은 운명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통해 현재에 대처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즉 미몽에 빠질 수밖에 없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정적 아이아스의 함선 옆 막사에서 오래전부터 발자국을 정탐하고 있다. 오디세우스는 처음부터 이 비극의 주인공 아이아스와의 경쟁 구도 안에서 소개된다. ‘아이아스(aias)’는 ‘애도하다’란 의미를 지닌 동사 ‘아이아쪼’에서 파생한 단어다. 이 단어는 궁극적으로 슬픔을 나타내는 감탄사 ‘아이아’에서 유래했다. 주인공 아이아스는 운명적으로 분노와 슬픔을 지닌 영웅이다.
소포클레스는 신의 영원함을 의미하는 부사 ‘아에이’와 순간을 사는 인간의 슬픔을 지닌 이름 ‘아이아’를 연결시켜 비극 《아이아스》의 전체 주제를 소개하고 있다. 아테나는 오디세우스에게 그가 스파르타산 암캐처럼 아이아스의 처소 앞에서 무엇을 조사하고 있는지 묻는다.
방패를 든 아이아스
오디세우스는 자신을 특별히 지켜주는 아테나에게 묻는다. “모든 신들 가운데 나를 가장 아껴주시는 아테나 여신의 목소리여! 내가 당신을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내가 당신의 소리를 얼마나 분명하게 들어 내 마음 가운데 그 의미를 알아채는지! 그것은 마치 튀르레니아 나팔의 청동 주둥이에서 나는 소리와 같습니다! 당신도 올바르게 아시는 것처럼, 저는 저를 싫어하는 ‘방패를 든 아이아스’의 뒤를 쫓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영웅들은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무기를 통해 정체성을 드러냈다. 예를 들어 헥토르는 ‘무섭게 끄덕이는 말털 볏을 가진 헬멧을 착용한 자’이며 아킬레우스는 ‘신적인 무구(武具)를 지닌 자’이다. 아이아스는 ‘방패를 들고 다니는 자’다. 호메로스는 아이아스를 몸집이 거대하며 모든 그리스인들 중에 가장 힘이 센 자라고 평가한다. 그의 별명은 ‘그리스인들의 성벽’이다. 아이아스는 엄청난 크기의 방패를 들고 다녔다. 그 방패는 소가죽으로 일곱 겹이나 장식돼 누구도 들지 못할 만큼 무거웠다.
오디세우스는 아이아스가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야만적인 행위를 했다고 아테나에게 말한다. 아이아스는 그리스 군대가 트로이인들로부터 약탈해온 가축 떼와 그 가축을 지키던 사람들을 모두 무참하게 살해했다. 사람들은 그가 이 비참한 행위를 한 후 피투성이가 된 채 자신의 막사로 돌아갔다고 말한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정적이자 트로이 전쟁의 영웅인 아이아스의 만행을 이해할 수 없어 아테나에게 묻는다. “왜 그가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폭력을 휘둘렀을까요?” 아테나는 “아킬레우스의 무구 때문”이라고 말한다. 트로이 전쟁에서 사망한 아킬레우스는 대장장이 신인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어준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이 무기는 너무나 눈부셔 그 누구도 눈을 뜰 수 없는 강력한 무기다. 그는 이 무기로 자신의 사촌 동생 파트로클로스를 실수로 죽인 헥토르를 살해했다.
아테나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그자의 눈에 제어하기 힘든 ‘미몽’을 들이부어, 치유할 수 없는 살육의 환희를 제지했다.” 아테나는 그리스 군대를 지키기 위해 아이아스의 눈에 ‘미몽’을 집어넣었다고 말한다. 고대 그리스어로 미몽은 ‘아테(ate)’다. 아테는 자신의 오만을 깨닫지 못하고 방치하는 게으른 자에게 당연히 오는 마음의 질병이다.
배철현 <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