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필요 없는 공연.’
‘주말형’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캐나다 출신 리듬앤블루스(R&B) 가수 ‘더 위켄드’(사진)는 진부하게도 느껴질 수 있는 이 말을 노래로 펼쳐 보였다. 10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총 25곡을 끊이지 않고 메들리 같이 휘몰아쳤음에도 불구, 지친 기색이나 음이탈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고음은 천정을 뚫는 듯 했다. 쓸쓸힌 가수의 감성어린 음색이 가슴에 어느때보다 깊게 다가온 시간이었다.
지난 9일 서울 고척동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8 더 위켄드’는 더 위켄드가 왜 프랭크 오션과 미겔을 넘어 PBR&B(R&B를 중심으로 팝, 펑크, 록, 재즈 등 다양한 장르가 결합된 장르)의 선두주자로 우뚝 섰는지를 보여준 공연이었다.
에티오피아계 캐나다인인 싱어송라이터 더 위켄드는 2010년 ‘위켄드’라는 이름으로 유튜브에 자신이 만든 곡을 올리며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는 미국 남부 힙합을 기반으로 한 흑인음악과 클럽음악으로 알려진 하우스 뮤직이 모든 장르를 독식하던 때였다. 듣는 이들이 두 장르에 지쳐갈 때쯤 캐나다 래퍼 드레이크가 더 위켄드를 발견했다. 평소 느릿한 템포, 몽환적인 전자음과 흐느적거리는 목소리를 좋아했던 드레이크는 자신과 비슷한 더 위켄드의 곡을 듣고 블로그에 포스팅하면서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드레이크는 결국 위켄드를 참여시킨 ‘크루 러브(Crew love)’까지 싱글로 선보이며 새로운 R&B 스타의 탄생을 알렸다. 더 위켄드는 2016년 제58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최우수 어반 컨템포러리 앨범상’과 ‘최우수 R&B 퍼포먼스상’을 받으며 R&B계에서 탄탄한 실력을 갖춘 R&B 대표 아티스트로 성장했다.
이날 더 위켄드는 영화 ‘블랙팬서’에 삽입돼 인기를 끌었던 ‘프레이 포 미(Pray For Me)’를 첫 곡으로 선사했다. 별다른 무대 장치 없이 담담하게 걸어 들어온 더 위켄드는 심심한 무대효과를 완벽한 라이브로 채웠다. 공연이 예정보다 20분 늦게 시작했지만 전주가 흘러나오자 관객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더 위켄드는 ‘스타보이(Starboy)’와 ‘파티 몬스터(Party Monster)’, ‘리마인더(Reminder)’ 등 쉴새 없이 히트곡들을 부르면서도 숨 찬 기색 하나 없이 여유있는 모습이었다.

더 위켄드는 밴드를 제외하곤 오로지 혼자서 퍼포먼스를 펼쳤다. 그러면서도 무대를 꽉 채우는 느낌을 줬다. 멜로디 구조를 부각하는 전자음악 중 하나인 엠비언트나 전자 파열음 등을 사운드로 활용한 덕이다. 연신 고음을 내지르면서도 박수로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거나 ‘아이 러브 유 코리아’를 외쳤다. 국내 스마트폰 광고음악에 수록되며 인기를 끈 ‘아이 캔트 필 마이 페이스(I can‘t feel my face)’가 나올 때는 전주 부분부터 뜨거운 함성이 터져나왔다. 멜로디와 비트가 상대적으로 쉬워 광고에 나온 구절을 부를 땐 관객 모두가 하나가 돼 따라부르기도 했다.

무대에서 한국 관객들과 특별한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더 위켄드는 공연 내내 소통하려고 노력했다. “한국에 처음 왔는데 너무 아름답다”고 말하며 가사 중간 중간에 ‘코리아’를 넣어 부르기도 했다. 외국 가수의 내한 공연마다 떼창으로 유명세를 타는 나라답게 더 위켄드가 호응을 유도할 때마다 관객들은 열렬히 답했다. ‘모닝(Morning)’을 부를 때는 관객들이 켠 휴대폰 조명으로 파도를 타며 고척돔을 환하게 밝혔다.

일부 곡은 리드 기타나 드럼 소리에 비해 베이스 반주가 지나치게 크게 울린 탓에 멜로디나 가수 음이 묻혀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한 관객은 공연 후 “베이스 음이 너무 깊게 울려 가사가 잘 들리지 않을 때가 있었다”며 “심지어 의자와 바닥까지 울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25곡을 쏟아낸 더 위켄드가 무대를 빠져나간 이후에도 관객들은 ‘앵콜’을 기다리며 쉽게 공연장을 떠나지 못했다. 공연 종료를 알리는 현대카드 측 방송이 나오고서야 자리를 떴다. 공연장 입구에 고드름이 얼어 주의하라는 방송이 나올만큼 추운 날씨였지만 더 위켄드는 세련된 PBR&B와 완벽한 라이브로 뜨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공연을 펼쳤다.

주은진 기자 jinz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