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그 여자의 여행 (2) 캐나다, 붉은 가을 vs 하얀 겨울
겨울산 '끝판왕' 로키산맥…영혼도 순백으로 정화된다
서울 12배 앨곤퀸 주립공원
'단풍의 바다'에 온 듯 착각
'비아레일' 타고 기차여행
삼나무 가지 차창에 스치고…
캐나다 단풍 보려면 메이플로드로
가을은 짧다. 아름다운 가을은 더욱 그렇다. 캐나다를 흔히 ‘단풍국’이라 부른다. 국기 한가운데 붉은 단풍잎을 그려넣을 정도로 단풍이 유명하다. 재미있는 건 캐나다의 상징과도 같은, 현재 캐나다 국기의 역사가 60년이 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전 캐나다 국기에는 단풍잎이 없었다. 대신 호주나 뉴질랜드 등 다른 영국 연방국가들처럼 유니언잭(영국의 국기)이 그려져 있었는데, 이 때문에 프랑스계 캐나다인의 불만이 일었다. 국민 간 갈등이 커지자 당시 총리였던 레스터 피어슨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국기 디자인을 공모했고, 그 결과 1965년에 지금의 국기가 채택된 것이다. 국민이 만든 국기인 셈이다. 캐나다 곳곳에서 붉은 단풍과 어우러져 펄럭이는 붉고 흰 국기를 바라보며 ‘국기 한번 잘 만들었네!’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토론토에서 퀘벡까지 붉은 물이 뒤덮은 길
이튿날, 여자는 햇살 싱그러운 길드 파크(Guild Park and Gardens)를 산책하며 아침을 맞이했다. 토론토 시내에 있는 수많은 공원 중 하나다. 단풍잎으로 가득 메워진 산책로는 레드 카펫처럼 붉게 물들었고, 하늘 천장을 뒤덮은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내리는 햇살들이 낙엽 위에서 별빛처럼 반짝였다.
단풍색이 스며든 붉고 노란 시간 속을 한참 거닐자 하늘 빛깔의 푸르름이 한아름 퍼졌다. 길이 끝나는 곳, 절벽 아래로 하늘처럼 깊고 맑은 호수가 펼쳐졌다. 끝을 알 수 없는 호수 저편, 바다처럼 진하고 시린 하늘이 이어졌다. 붉은색에 익숙해져 버린 시야를 뒤덮은 푸른 향연에 눈앞이 어지럽다. 아! 도시 속에 있는 공원이 있는 게 아니라 공원 속에 도시가 있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그 남자: 기차로 로키산맥에, 하얀 캐나다를 만나다
비아레일 타고 눈 덮인 로키로 떠나다
온 세상이 새하얀 눈으로 뒤덮이는 캐나다의 겨울은 동화 속 설국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겨울 왕국’ 그 자체다. 코끝이 찡하도록 신선한 겨울 공기의 청명함이 온몸에 전해지는 짜릿함을 즐길 줄 아는 그 남자, 겨울 산의 끝판왕인 캐나다 로키산맥으로 떠났다.
비아레일은 캐나다와 미국 일부 지역을 연결해 주는 철도로 캐네디언, 코리더, 살레르, 오션 등 다양한 노선이 존재한다. 서쪽의 밴쿠버에서부터 위니펙과 토론토, 몬트리올 등을 지나 동쪽 끝 핼리팩스에 이르기까지 그 거리는 무려 1만3000㎞에 달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30번을 갈 수 있는 어마어마한 거리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삼나무 가지들이 차창을 살며시 쓰다듬는다. 울창한 숲길을 지나면 밤사이 내린 서리가 뒤덮인 들판이 두 팔 벌려 기차를 맞이한다. 어느샌가 길동무가 돼 나란히 달리던 강물 위로 하얀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물안개를 헤치며 아침 햇살이 반짝이자 조용히 잠자고 있던 오리떼들이 ‘푸드덕’ 날아오른다. 기분 좋게 흔들리는 의자에 몸을 기대고 책을 펼쳐 들었다.
순백의 빛으로 정화되는 기차여행
“밤하늘의 달빛과 별빛을 볼 수 있도록 실내 등을 최대한 줄였어요.”
그 세심한 배려 덕분에 머리 위로 떠 있는 수천, 아니 수만 개의 별들이 함께 달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은하철도 999가 검은 은하수를 유영하듯이, 칠흑 같은 어둠을 헤치고 반짝이는 별들을 이정표 삼아 기차가 달린다.
이제는 객실로 돌아갈 시간이다. 지금의 이 기분이 밤새도록 이어질까? 불현듯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떠났던 부산행 밤 기차에서의 안 좋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 몸 하나 끼워 넣기 힘들 정도로 좁은 좌석, 좌석의 반 이상을 침범했던 아저씨의 담배 냄새와 코골이, 어디선가 들려오던 갓난아기의 칭얼거림에 억지로 청하던 잠마저 달아나 버렸던 기억. 하지만 이런 불안감은 자리로 돌아오자 깨끗이 사라졌다. 열차의 직원이 좌석을 완벽한 나만의 침대로 변신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잠들고 싶지 않은 밤이 지나자 기차는 고요한 겨울 호숫가 곁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식당칸으로 모여든 승객들은 아침 식사를 위해 자리를 잡는다. 커다란 창문과 맞닿아 놓인 테이블에 삼삼오오 둘러앉자 저 멀리 여명이 밝아온다. ‘파란’ 겨울 그림이 창가에 새겨지는 것을 바라보며, 모닝커피 한 잔을 들이켠다. 말간 아침을 맞이하기에 더없이 좋은 순간이다. 캐나다 기차 여행. 세상에 없을 것만 같던 꿈 같은 낭만 여행은 현실이 되고, 캐나다의 하얀 겨울 깊숙이를 유영하는 남자의 영혼은 순백의 빛으로 정화된다. 마법 같은 기차 여행의 또 다른 하루는 그렇게 시작된다.
※그 남자(오재철), 그 여자(정민아) : 결혼과 동시에 414일간 신혼 세계여행을 다녀왔다.
중앙대 사진학과 출신인 그 남자와 웹기획자 출신인 그 여자는 부부이기에 앞서 한 개인으로서 한 지역에서 경험하게 되는 두 가지 여행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공동 저서로 《함께, 다시, 유럽》 《우리 다시 어딘가에서》 등이 있다.
글·사진 정민아 여행작가 jma7179@naver.com / 오재철 여행작가 nixboy99@daum.net
여행 메모
항공편 캐나다 동부의 토론토와 서부의 밴쿠버 모두 매일 직항편을 운항한다. 토론토까지는 약 13시간, 밴쿠버까지는 약 10시간 걸린다.
비자 캐나다 전자 비자(ETA)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건 2016년부터다. 인터넷으로 직접 신청이 가능하며, 신청 시 만료되지 않은 여권과 이메일 주소, 신용카드가 필요하다. 신청 서류와 비용을 내면 72시간 내로 승인 이메일을 받게 된다. 승인이 난 뒤에는 전산 연결이 돼 있어 따로 승인 메일을 프린트하지는 않아도 된다. 유효 기간은 발급일로부터 5년인데, 혹 여권 유효 기간이 5년 미만으로 남았을 경우에는 여권 만료일까지만 유효하다.
시차 캐나다 동부와 서부의 시차가 다르다. 동부인 토론토는 한국보다 14시간 늦고(서머타임이 적용되면 13시간 차이), 서부인 밴쿠버는 한국보다 17시간이 늦다. (서머타임이 적용되면 16시간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