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는 정말 놀랐지만, 우리 가족이 하나 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커트 탈락하고도 만족한 최경주 "암, 좋은 아빠·남편 되돌아간 계기"
한때는 쳐다보기만 해도 베일 것만 같았던 최경주(48·사진)의 눈매는 한결 사그라든 모습이었다. 26일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총상금 10억원)이 열린 경남 김해 정산CC(파72·7300야드)에서 만난 그는 “갑상샘암이 보험이 안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흔하다지만 수술을 앞두고는 잠을 청하지 못할 정도로 걱정했다”고 말했다. 2020년 미국프로골프(PGA) 챔피언스(시니어)투어 진출을 앞두고 몸 관리에 들어갔던 최경주는 지난 8월 갑작스레 갑상샘에 종양이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갑상샘을 모두 제거하면 선수 생활이 어렵다는 의사의 진단이 있었다.

한국 골프의 선구자라는 책임감으로 멈추면 마치 ‘큰일’이 날 것처럼 앞만 보고 달려왔던 그다. 숨을 고르고 주위를 둘러봤다. 그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옆 가족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예전에는 가족과 어딜 놀러가도 머릿속에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 안 된다’는 조바심이 있었습니다. 남들이 나를 앞지를 것만 같았어요. 암이 생기고 나를 걱정하는 가족을 보니 미안하면서도 정말 큰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암이 생긴 뒤 우리 가족은 더 끈끈해지고 더 단단해졌습니다. 이젠 아빠 최경주, 남편 최경주로 더 많이 시간을 쓰고 있어요. (현재 생활이) 정말 재밌습니다.”

종양 부분만 말끔히 떼낸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아직 경기에 나설 정도의 몸을 만들진 못했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을 걸고 열리는 이번 대회의 출전을 건너뛸 순 없는 일. 지난 6월 PGA투어 메모리얼 토너먼트 이후 처음으로 잔디를 밟은 최경주는 비록 이틀 합계 8오버파 152타로 커트 통과를 못했음에도 만족하는 표정을 지었다.

최경주는 “내 골프 인생의 정년퇴직이 언제가 될진 모르겠으나 경기할 수 있는 시니어투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며 “앞으로는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면서 시니어투어라는 새 길을 닦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최경주는 내년 2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리는 파머스 인슈어런스 오픈 출전을 위해 남은 기간 몸 만들기에 들어간다. 이날 최경주 인비테이셔널 2라운드에서는 이형준(26)이 8언더파 136타로 선두를 달렸다.

김해=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