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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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PC 사업을 영위하는 이유를 명확히 댔다. 끊임없이 나돌던 매각설을 노트북 신제품 출시와 동시에 잠재운 셈이다.

22일 삼성 노트북 Flash(플래시)의 신제품 발표 행사장. 신제품에 대한 기자들의 질의가 이어진 가운데 눈에 띄는 장면이 나왔다. 신제품이 아닌 'PC 사업을 계속하는 이유'에 대한 질의였다.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었다. "(안되는 사업)왜 하세요?"의 맥락이다. 삼성전자로선 불편한 질문일 수 있었지만, 꼭 들어야 할 답변이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PC를 여전히 IT 주력제품이라고 판단했다. 이민철 삼성전자 PC사업부 마케팅팀 상무는 "2011년 태블릿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노트북이 모두 사라질 것이라 말했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한다"며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의 용도는 다르기 때문에 셋 모두 앞으로 생존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PC 시장 축소에도 계속 팔릴 것이란 얘기다.

이 상무는 PC 사업의 파생효과도 제시했다. 그는 "IT 제품군에선 PC가 중심 제품이다. PC가 있어야 모니터도 필요하고, 프린터 등 각종 주변기기들도 필요하게 된다"며 "여기에 모바일과 PC 간 커넥티비티(연결성)도 고려하고 있어서 이 부분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중"이라고 강조했다.

PC 시장의 침체는 스마트폰, 태블릿의 성장과 함께 시작됐다. PC는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폭발적 성장세에 맥을 못췄다. 삼성전자의 PC 사업엔 늘 물음표가 달렸고 수익성이 없는 사업으로 평가받았다. 매각설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다.

수익성이 떨어지자 삼성전자는 PC 사업 비중을 줄였다. 2012년 말 조직개편에서 IT솔루션사업부가 사라졌고 PC 사업이 IM 부문 내 무선사업부로 흡수 통합됐다. PC 사업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삼성전자의 PC 출하량은 2012년 1500만대 수준에서 2013년 1200만대, 2014년 600만대, 2015년 350만대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삼성 노트북 Flash.
삼성 노트북 Flash.
이후 삼성전자는 매각이 아닌 전열 재정비를 택했다. PC 고유의 시장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2015년말 삼성전자는 IM 부문에 흩어진 PC개발, 디자인, 마케팅인력을 모아 무선사업부 내에 PC 사업팀을 신설했다. 삼성전자는 이를 기점으로 다양한 노트북 신제품들을 출시했다. 무게를 줄이고 배터리 성능을 향상시킨 울트라슬림 노트북, 게임용으로 성능을 높인 게이밍 노트북, 노트북과 태블릿의 장점을 합친 투인원 노트북, 갤럭시노트 시리즈의 S펜을 탑재한 노트북 펜 등으로 시장을 두드렸다.

진화된 노트북을 내세운 국내 PC 시장은 5년 만에 다시 성장세로 돌아섰다.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2016년 국내 PC 출하량은 2015년 대비 3.2% 늘어난 462만대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전세계 PC 출하량이 5.7% 감소한 것을 감안하면 의미있는 성장이다.

태블릿의 성장세 둔화가 노트북 시장엔 호재로 작용했다. 고성능에다 얇아지기까지한 노트북에 태블릿은 설 자리를 잃기 시작했다. 노트북이 변화를 거듭하는 동안 태블릿은 다양한 크기가 출시되거나 메모리 용량이 커지는 것 외엔 뚜렷한 변화가 없었다.

결국 태블릿은 휴대성과 성능,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노트북에 수요를 내줬다. 태블릿이 5년안에 PC를 대체할 것이라던 애플 창업주 고(故) 스티브 잡스의 예언도 틀린 말이 됐다. 실제 초경량 노트북 시장 출하량 규모는 2011년 400만대에서 2016년 4900만대로 12배 이상 성장했다. PC 사업을 접지 않고 영위했던 삼성전자가 옳았던 셈이다.

최근 삼성전자는 PC 사업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제품 차별화에 힘을 주고 있다. 국내 PC 시장이 2017년 3분기부터 다시 역성장에 접어들어서다. 삼성전자가 이날 출시한 '노트북 플래시'는 밀레니얼 세대(1981년~1996년 출생한 세대)의 특성을 감안, 디자인과 빠른 무선인터넷 속도를 차별화로 내세운 제품이다.삼성전자는 현재 한국·미국·중국·브라질 등을 주력 시장으로 선정해 PC 사업을 펼치고 있다. '노트북 플래시' 역시 4개국을 중심으로 판매할 예정으로 100만대 이상 판매가 목표다.

불과 5~6년 새 출하량이 1000만대 이상 줄며 '존폐(存廢)' 기로에 섰던 삼성전자 PC 사업. 결국 '존(存)'을 택한 삼성전자에게 남은 건 만회 뿐이다.

이진욱 한경닷컴 기자 showg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