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스마트폰 사상 최고가다. 애플의 신형 아이폰 3종은 스마트폰 최고가를 또 갈아치웠다.

애플은 1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스티브 잡스 극장에서 신제품 공개 행사를 열고 신형 '아이폰' 3종을 소개했다. 새 아이폰의 이름은 '아이폰XS·아이폰XS 맥스·아이폰XR' 등으로 각각 5.8인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6.5인치 OLED·.6.1인치 LCD(액정표시장치) 화면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신제품 공개 이후 아이폰 3종에 대한 혹평이 이어졌다. 혁신은 없는데 가격만 비싸졌다는 지적이 주를 이뤘다. 실제로 신제품 3종은 지난해 출시된 '아이폰X(텐)'의 외관을 그대로 계승하고 눈에 띄는 기능적 변화도 없다. 변화라면 역대 최대 화면(6.5인치)과 A12 바이오닉 칩을 채택했다는 것 정도.

아이폰XS의 가격은 미국 기준 999달러(약 112만원)부터다. 상위 모델인 '아이폰XS 맥스'의 경우 1099달러(약 124만원)다. 이는 판매세나 부가가치세 등 세금을 고려치 않은 가격이다. 세금 고려시 아이폰XS는 124만원, 아이폰XS 맥스는 136만원 정도다. 아이폰XS 맥스 512GB 모델의 국내 가격이 200만원까지 치솟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유진투자증권은 새 아이폰의 국내 출시가가 최고 205만원에 달하고 모든 신제품의 국내 출시가가 100만원을 넘을 것으로 내다봤다.

고가 논란에도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자신만만했다. 그는 "혁신 기술을 적절한 가격에 구매할 소비자는 언제나 존재한다고 믿는다"며 "애플은 수익을 올리기에 충분한 고객 기반이 있다"고 말했다. 혁신 여부의 경우 기업의 주관적 입장에서 늘 하는 소리니 차치하더라도, 소비자가 언제나 존재한다는 말은 자신감일까 오만함일까. 의문은 지난해를 상기해보면 풀린다.

애플이 지난해 출시한 아이폰X(텐)은 M자형 노치 디자인으로 '탈모폰'이란 비아냥을 들었다. 게다가 국내 출고가가 142만~163만원으로 책정되며 고가 논란까지 일으켰다. 국내외 분위기를 봤을 때 안 팔릴 것 같았다. 그러나 아이폰X은 출시 후 10개월 동안 누적판매량 6300만대를 기록했다. 역대 가장 많이 팔린 '아이폰6'와 비교하면 3000만대 부족했지만, 높은 평균판매가 덕에 아이폰6와 같은 수준인 620억 달러(약 69조688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덜 팔았지만 많은 이익을 남긴 셈이다. 이는 애플이 고수해 온 고가 전략의 힘이다.
아이폰XS 맥스와 아이폰XS
아이폰XS 맥스와 아이폰XS
애플의 고가 전략은 아이폰 출시 초기부터 소비자들에게 프리미엄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특이한 것은 아이폰의 비싼 가격이 오히려 애플의 충성고객을 양산했다는 점이다. 아이폰의 고급 이미지는 소비자의 감성을 사로잡았고 자기 정체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이용자 문화로 진화했다. '아이폰이니까 비싼 게 당연하지'라는 소비자 심리는 아이폰 가격을 지속 상승시키는 출발점이 됐다.

실제로 애플은 아이폰의 새로운 시리즈를 출시할 때마다 꾸준히 가격을 올렸다. 프리미엄 가격대의 제품 위주로 판매해 수익은 매년 상승 중이다. 가격이 비싸도 팔리니 올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애플은 지난해 613억달러(약 59조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프리미엄 이미지를 브랜딩하는 마케팅적 요소 외에 아이폰이 고가인 현실적 배경도 있다. 애플은 스마트폰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동시에 개발하고 관리한다는 점이다. 하드웨어는 개발하지만 운영체제는 구글 안드로이드를 쓰는 삼성 같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제조사보다 더 많은 자원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비싼 희금속(rare metal)도 아이폰의 가격을 높이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아이폰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원소, 주기율표의 103가지 원소 중 절반 가량을 소재로 사용한다. 애플은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희금속을 들여오고 대규모 수작업을 하기 때문에 인건비도 많이 든다.

애플은 최근 수 년간 혁신 부재와 고가 논란에도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때문에 오만하다는 인상을 풍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애플은 해마다 늘 2억대 이상의 아이폰을 팔아치우며 '고가'에 대한 당위성을 증명했다. 10여년전부터 공을 들인 이미지 브랜딩이 묵인 가능한 '최고가'로 이어진 결과다. 애플의 오만함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진욱 한경닷컴 기자 showg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