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라 작가의 그리스 섬 여행 (4) 서부 크레타
'사자 머리 언덕'에 서면… 카잔차키스의 숨결이 닿을 듯 하네

글·사진 고아라 여행작가 minstok@naver.com

“내 마음에 크레타의 시골 풍경은 잘 다듬은 산문, 단정한 어순, 절도 있는 표현, 군더더기 수식을 피한 강력하고도 절제된 산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엔 경박한 데도, 작위적인 구석도 없다. 표현해야 할 것은 위엄 있게 표현하지만 엄격한 행간에서는 의외의 감성과 애정을 느낄 수 있다. 계곡에서는 레몬나무와 오렌지나무가 대기를 향내로 물들였고 바다의 광막한 넓이에서는 무궁한 시구가 흘러나왔다. 크레타. 나는 나직이 불러 보았다. 크레타. 내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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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처음 문을 열었을 당시만 해도 아주 작은 규모였지만, 2009년 크레타 지자체를 비롯해 카잔차키스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길이 모여 현대와 전통이 적절히 조화된 지금의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2층으로 구성된 박물관 내부에는 카잔차키스의 작품을 포함해 자필 메모, 사진, 다큐멘터리 영상, 개인 소지품 등 그야말로 카잔차키스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약 5만 점에 달하는 유품과 자료를 모으는 데는 카잔차키스의 두 번째 부인이자, 마지막까지 그의 곁을 지켰던 엘레니 카잔차키스(Eleni Kazantzakis)의 도움이 컸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조르바와 관련된 전시물들이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초판본부터 1964년 개봉한 영화 관련 자료는 물론 그리스인 조르바의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 알렉시스 조르바의 사진, 카잔차키스와 조르바가 실제로 주고받은 편지 등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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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티야는 크레타 문학을 사랑하는 자들의 성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물관 외에도 젊은 문학가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다양한 세미나와 이벤트가 운영되고 있다. 특히 매년 7월 중순에 열리는 탁시데본타스(Taxidevontas)라는 축제가 흥미롭다. 카잔차키스는 작가이기 전에 대단한 여행가이기도 했다. 그리스를 넘어 유럽,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까지 평생을 바람처럼 여행하며 세상을 탐구했고, 수많은 기행문을 남겼다. 탁시데본타스는 그가 여행했던 국가 한 곳을 선정해 그 나라의 문화와 예술을 소개하는 일종의 복합 문화 축제다. 2016년 스페인을 시작으로 작년은 영국, 올해는 러시아가 선정됐다.

미르티야까지 갈 여유가 없다면 이라클리온 시내에 있는 크레타 역사박물관을 방문해 볼 것을 추천한다. 별도로 마련된 니코스 카잔차키스 관에 그의 일생과 작품을 담은 정보, 유품 등이 알차게 채워져 있다. 크레타 섬의 역사를 함께 둘러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1957년 독일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유해는 고향 땅으로 돌아왔지만, 이라클리온 성벽을 넘을 수는 없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도인이었지만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그리스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은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인 《미할리스 대장》과 《최후의 유혹》을 신성 모독이라는 죄목하에 금서로 지정하고 카잔차키스를 파문시켰다. 그래서 그는 이라클리온 성벽 위에 묻혔다. 네모난 무덤과 그 앞에 꽂힌 나무 십자가가 전부다. 소박하지만 그 어느 것보다 광활한 무덤이다. 그 옆으로는 이라클리온의 구시가지와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에게해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카잔차키스가 생전에 미리 적어 두었다던 세 줄의 묘비명을 곱씹어본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이번에는 크레타 남쪽 끝자락으로 향한다. 험난한 아스테루시아 산맥(Asterousia Mountains)을 굽이굽이 넘자 리비아해를 초승달 모양으로 껴안은 마을, 렌타스(Lentas)가 나온다. 너무 외진 탓에 문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무려 2400년의 역사를 지닌 고도이자, 헬레니즘 로마 시대에는 고르틴(Gortyn)의 주요 항구도시였다. 렌타스는 해안으로 툭 튀어나온 곶(Cape)의 지형이 사자 머리 형상과 닮았다 해서 라이언(Lion· 사자)이란 별칭으로도 불린다. 옛 이름인 레빈(Levin) 또한 페니키아어로 사자를 뜻하는 단어, 라비(Lavi)에서 기원했다고 전해진다. 카잔차키스는 그의 30대 시절에 종종 렌타스로 내려와 머물렀다. 조용하고 비밀스러운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고, 신비로운 자연 속에서 영감을 찾고, 사자 머리 절벽에 난 동굴에 들어가 글을 썼다. 후에 그의 두 번째 부인이 된 엘레니와 함께 이곳에서 뜨거운 여름 한 철을 보내기도 했다. 내 집 앞마당처럼 작고 아늑한 렌타스 해변에 나가 주변을 굽어본다. 사람들은 나무 그늘 밑에 보자기를 깔고 책을 읽다가 이따금 수영하러 나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