팻 시프먼 지음 / 조은형 옮김 / 푸른숲 / 388쪽 / 1만8500원
《침입종 인간》은 약 20만 년 전 아프리카 대륙에서 진화를 시작해 경쟁자를 멸종시키고 지구 전체를 장악한 현생인류 호모사피엔스의 흑역사를 다룬 책이다. 책을 쓴 팻 시프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인류학과 명예교수는 동물고고학과 화석생성학의 세계적인 대가다. 그는 이 책에서 아프리카를 벗어난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수십만 년 동안 유라시아에 터를 잡고 살던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키고 전 세계를 단일종으로 통일하게 됐는지 다양한 연구 결과를 근거로 설명한다.
인간이 아프리카를 벗어나 침입종으로서 활약한 첫 무대는 약 4만 년 전 유라시아였다.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은 여러모로 비슷했다. 둘 다 몸집이 크고 머리를 쓸 줄 알았다. 큰 먹잇감도 거뜬히 잡는 능숙한 사냥꾼이자 도구 제작자였다. 여럿이 함께 모여 살았고 불을 쓸 줄 알았다. 그런데 왜 현생인류만 살아남고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했을까.
네안데르탈인의 멸종 이유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가설은 기후변화설, 현생인류와의 경쟁설이다. 저자는 이 두 가지 가설이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보완적이라고 주장한다. 기후변화로 인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현생인류는 네안데르탈인을 능가했다. 예를 들면 에너지 필요량을 계산한 결과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보다 7~9% 많았다. 현생인류가 더 혹독한 기후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신체조건을 가졌다는 것. 또 현생인류는 뼈바늘로 가죽옷을 만들어 입었는데 이는 추위 속에서 매머드 같은 큰 짐승을 사냥하는 데 결정적으로 유리했다.
무엇보다 저자가 새롭게 주장하는 것은 최상위 포식자 중 하나인 늑대와의 동맹이다. 현생인류는 약 3만6000년 전부터 늑대를 가축화한 ‘늑대-개’를 사냥의 조력자로 삼으면서 사냥의 효율이 높아졌다. 늑대-개 덕분에 이전보다 사냥 성과가 56%나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늑대-개는 인간이 나눠주는 음식을 먹으며 인간의 주거지에서 다른 동물의 공격과 경쟁도 피할 수 있었다.
현생인류가 침입종으로서 펼친 활동은 이뿐이 아니다. 지구 곳곳에서 발길 닿는 곳마다 수많은 생물종을 멸종시키고 생태계를 교란·파괴했다. 저자는 자연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 즉 침입자라는 실체를 제대로 인식할 때 지구 생태계에서 우리의 역할을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