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하이닉스 빼면 자동차·조선·철강 줄줄이 침체
북핵·중국 리스크·노동비용 급증 "한국만 뒤처지는 느낌"
피치·무디스 신용등급 하향 경고…외국인 투자심리 위축 불가피
반도체 호황은 한국 경제에 분명 ‘축복’이다. 삼성전자 한 곳이 작년 한국 전체 수출의 21.3%를 감당했을 정도다. 문제는 ‘축복의 지속성’이다. 반도체 경기는 항상 사이클을 탄다. 마냥 좋을 수만은 없다. 두 회사를 걷어내면 허약한 체력이 드러난다. 반도체의 공백을 메울 만한 ‘대타’가 보이지 않는다.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주요 제조업은 줄줄이 침체에 빠졌다. 갑작스러운 반전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북핵 위기 등 대내외 악재가 즐비하기 때문이다.

앞날엔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우선 북핵 등 지정학적 불안이 크다. ‘안보’에 대한 우려는 ‘경제’로 직결된다.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은 일찌감치 경고장을 날리기 시작했다. 피치는 이날 긴급 성명을 통해 “군사적인 갈등이 없더라도 (한반도) 긴장이 추가로 고조된다면 한국에 경제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며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를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이 벌써 한국의 관광과 교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다른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도 지난 7일 “한반도의 (군사) 분쟁 상태가 장기화하면 한국의 신용등급이 대폭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 투자심리가 위축되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중국 리스크’도 확대되고 있다. 최전선에 있는 자동차 업종은 이미 치명상을 입었다. 현대자동차의 2분기 당기순이익은 9136억원에 그쳤다. 전년 대비 48.2% 급감했다. 현대차 분기 순이익이 1조원 아래로 떨어진 것은 국제회계기준(IFRS)이 적용된 2010년 후 7년 만에 처음이다.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이 표면적 원인이다. 2분기 중국 내 판매대수는 10만5000대로 전년보다 64.2% 줄었다. 북한을 둘러싼 미·중 간 갈등이 깊어지면 사드 보복 수위는 지금보다 더 올라갈 우려도 크다.
정부마저 기업들을 옥죄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근로시간 단축, 협력회사와의 상생 등 ‘도덕적 우위’로 포장했지만 경제 현실과는 괴리가 있는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사법부의 연이은 ‘친노동 판결’도 기업엔 견디기 힘든 부담이다.
정부의 잇따른 ‘투기근절’ 대책으로 부동산 경기가 급랭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많다. 건설업·부동산업·임대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를 훌쩍 넘는다. 고용에 기여하는 비중도 9%대에 달한다. 부동산 경기가 갑자기 식으면 내수가 직격탄을 맞는 이유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일부 업종의 선전이 경제 현실을 왜곡하는 것도 문제다. 거죽만 보면 오진하기 쉽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이를 ‘착시’라고 단언했다. 지난달 31일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10대 그룹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들의 2분기 영업이익은 오히려 20% 이상 감소했다”고 말했다. 10대 그룹 내에서도 반도체 디스플레이 석유화학 등 몇 개 업종만 반짝 특수를 누렸다. 경제계 관계자는 “세계 경제는 모처럼의 호황으로 들떠 있는데 한국만 뒷걸음질치는 느낌”이라고 아쉬워했다.
안재석/윤정현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