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권좌에서 물러난 늙은 수컷 침팬지가 있다. 그는 새 지배자가 될 만한 젊고 유능한 수컷 침팬지에게 지지를 보낸다. 그 침팬지가 권력을 잡았을 때 자신은 원로로서 막후 실세로 행세하기 위한 전략이다. 높은 지위를 놓고 경쟁하는 침팬지들은 사전에 지원 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친구들의 털을 골라주면서 비위를 맞춘다. 침팬지 사회에서 벌어지는 정치 행위들은 인간사로 치환해도 무리가 없다.

[책마을] 동물도 정치하고, 의심하며, 희생한다
동물의 지능은 인간의 오랜 관심사다. 동물이 눈에 보이는 현재에만 갇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만이 미래에 대해 숙고하고 장래를 대비해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은 동물의 지능을 보여주는 숱한 사례를 들어 이 같은 믿음이 잘못임을 증명한다. 저자는 네덜란드 출신 동물행동학자이자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이다. 타임이 2007년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중 한 명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각종 연구에 따르면 협력과 유머, 정의, 이타심, 합리성 등 인간의 것이라고 여겼던 여러 특징이 동물 사이에도 나타난다. 바다에서 한 돌고래가 기절하자 두 돌고래가 다가왔다. 이들은 기절한 돌고래의 양옆 가슴지느러미 밑을 자기 머리로 떠받쳐 기절한 돌고래의 호흡을 도왔다. 두 돌고래는 이런 행동을 하는 동안 자신의 호흡공이 물에 잠겨 숨을 쉴 수 없었지만 기꺼이 희생했다.

남의 마음을 짐작해 자기 행동 전략을 세우는 동물들도 있다. 자기가 먹이를 숨기는 장면을 다른 새가 지켜봤다는 걸 아는 어치는 그 새가 사라지자마자 먹이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 다른 새의 먹이를 훔친 적이 있는 새들만이 그렇게 한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남의 행위 가능성을 의심하는 것이다.

논의의 끝에는 인간을 기준으로 동물의 능력을 평가하고 우열을 가리는 방식이 타당하지 않다는 저자의 주장이 있다. 인간에게 어둠 속에서 방향을 알기 위한 초음파 식별 능력이 없다고 해서 인간이 열등한 게 아니듯 계산 능력이 필요 없는 다람쥐가 숫자를 열까지 세지 못한다고 해서 다람쥐가 열등한 것은 아니라는 논리다. 종마다 생존에 필요한 능력이 다르고 그에 따라 능력도 다르게 발달했기 때문에 어느 것을 더 특별하거나 우월하다고 여길 근거는 없다고 저자는 일침한다.

인간중심주의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동물의 지능을 얕잡아보는 배경에 동물이 지능을 갖고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하는 것 자체에 심리적 저항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 책 부제이기도 한 저자의 질문은 그래서 연구 대상인 동물이 아니라 독자인 우리를 향한다. “우리는 동물이 얼마나 똑똑한지 알 만큼 충분히 똑똑한가?”.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