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시대 현대미술 방향 제시
◆혁신적 시도에 독창성 가미
문화적으로 풍족한 1990년대에 성장한 ‘3040세대’ 작가들은 잠깐 그치고 마는 트렌드에 기대기보다 혁신적 시도에 독창성까지 가미한 다채로운 작품을 들고 나왔다.
인조털, 목탄 등의 색다른 오브제를 사용하는 김남표 씨(47)와 색띠 추상화로 유명한 하태임 씨(44)는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갤러리에 초대됐다. 지난 2일부터 ‘순간적 풍경-닭살돋다’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을 시작한 김씨는 회화 작업뿐 아니라 무대 디자인이나 비디오 예술을 통해 작업 세계를 꾸준히 확장해 왔다. 오는 18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에는 붓 대신 면봉과 나이프를 이용한 독특한 작품을 통해 회화 장르의 확장 가능성을 짚어낸다. 프랑스 다종국립학교와 홍익대 대학원을 졸업한 하씨는 디지털시대 소통의 중요성을 색띠로 묘사한 20점을 걸었다.
49세 동갑내기 작가 권오상, 이동기 씨는 서울 청담동 K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사진 조각가’라는 별칭이 따라 다니는 권씨는 이번 전시에 사진을 잘라 붙여 인체 형상을 만든 구작과 실물 크기의 자동차를 청동으로 제작한 신작을 함께 걸어 사진과 조각의 경계를 명쾌하게 짚어낸다. 아톰의 머리와 미키마우스의 얼굴을 조합한 캐릭터 ‘아토마우스’를 개발한 이씨는 해외 사이트에 소개된 한국 드라마의 캡처 장면을 다시 그림으로 재탄생시킨 작품으로 한국 팝아트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아버지의 물질적 유산인 책에 대한 기억과 이야기를 설치미술로 재구성한 강상빈과 강상우 형제(아트선재센터), 캔버스 대신 얇은 철망을 겹쳐 만든 화면에 삶과 죽음, 꿈과 현실이라는 이질적인 두 세계를 묘사한 박승모(포스코미술관), 토르소와 같은 신체 일부나 옷의 패턴, 주름 등을 소재로 회화의 표현 방식을 탐구하는 강석호(페리지갤러리), 예술가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무력함을 점화 형태로 시각화한 전소정(송은아트스페이스), 시적 여운을 알록달록한 추상미학으로 조형화한 권현진 씨도 신작을 걸거나 준비 중이다.
◆인터랙티브 아트도 선봬
첨단기술과 기발한 상상력을 가미한 작품을 모은 기획전도 줄을 잇고 있다.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오 친구들이여, 친구는 없구나’ 전과 국제갤러리의 ‘스노플레이크(A Snowflake)’ 전은 현대미술의 재료와 물성에 대한 실험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자리다. 쓰레기를 활용한 설치작품, 사진을 기반으로 스마트폰과 앱(응용프로그램)을 활용한 작업, 렌티큘러 이미지로 제작한 그림 등이 감성을 건드린다. 미디어 아티스트 문준용, 김주리 등이 참여한 금호미술관의 ‘빈 페이지’ 전은 관람객의 능동적 참여를 유도하는 인터랙티브 아트를 발가벗겨 보여준다.
◆첨단기술 결합한 작품에 익숙
젊은 작가들은 정보화 물결을 온몸으로 체험한 만큼 회화보다 첨단기술을 활용한 미디어아트와 설치미술, 영상아트에 익숙해져 있다. 작품에도 첨단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서인지 참신한 상상력과 의표를 찌르는 반전, 세련된 설치 미학이 배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의 차별화한 작품이 세계시장에서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까닭이다.
미술평론가 정준모 씨는 “1980~1990년대 문화적 세례를 받고 자란 이들의 작품성이 국제무대로 지평을 넓혀가기 위해서는 해외 전용 전시장 개설, 국제적 교류 확대, 세계 미술정보 확보 등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