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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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부처의 여성 사무관 A씨는 일 욕심이 많고 업무 성과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얼마 전 둘째 아이를 임신했다는 걸 알고 고민에 빠졌다. 시댁에선 2년가량 육아휴직을 써서 두 아이를 안정적으로 보살피기를 원하고 있지만 장기간 자리를 비우기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A사무관은 “안 그래도 첫째 아이를 낳고 시간이나 체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며 “이번에 또 휴직하면 업무 감각이 떨어질 뿐 아니라 남자 동기들에 비해 승진도 늦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공무원은 여성들에게 ‘꿈의 직장’으로 통한다. 최대 3년의 육아휴직과 ‘칼퇴(정시퇴근)’, 단축근무 등 근무 환경이 장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여성 공무원의 고충도 일반 기업에 다니는 여성 직장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전문 관료로서의 포부가 큰 여성일수록 현실은 가혹하다.

◆꿈의 직장인 줄 알았더니…

중앙부처 여성 공무원들은 고참 사무관부터 과장이 되기까지의 10여년을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로 꼽는다. 가정과 일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남성과 동등하게 사회 제도와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는 전문 관료의 매력이 크긴 하지만 야근과 주말 출근이 일상이다.

18개월짜리 아들을 둔 여성 사무관 B씨는 사실상 가정을 포기했다. 월급 대부분을 가사도우미 급여로 쓰고 있다. 집안일을 돌봐주는 가사도우미와 반찬을 해주는 이모님, 아이를 돌봐주는 베이비시터까지 세 명을 고용 중이다. 친정과 시댁에 아이를 맡길 수 있는 형편은 아닌데 일에서 뒤처지고 싶지 않아서다.

지난달 숨진 보건복지부 소속 사무관 C씨도 세 아이를 둔 엄마였다. 그는 지난달 15일 일요일 아침에 출근했다가 정부세종청사 계단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C씨는 전날인 토요일에도 근무하고 당일엔 새벽 5시에 출근했다. 평일에도 오후 9시 전에 퇴근한 적이 없었다.

해외 근무가 잦은 외교부 여성 외교관들은 결혼과 육아를 포기한 경우가 많다. 결혼 후 해외로 발령나면 직장에 다니는 남편과 아이를 두고 홀로 임지로 떠나곤 한다.

◆“4년 연속 휴직 부러워”

그래도 일반 직장 워킹맘들에겐 아이 한 명당 최대 3년의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여성 공무원의 여건은 꿈과 같은 일이다. 최근엔 상사 눈치를 보지 않고 과감하게 3년의 육아휴직을 쓰는 여성 공무원도 늘어나는 추세다. 여성 비율이 높은 일부 부처에선 “일 잘하는 사무관들은 모두 육아휴직 중이라 일할 사람이 없다”는 앓는 소리까지 나온다.

중앙부처의 사무관 D씨는 입직하자마자 두 아이를 낳고 4년 연속 육아휴직기를 보냈다. 공무원으로서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 4년간은 가정에 ‘올인’하고 복직 후에 업무를 열심히 해도 늦지 않는다는 생각에서다. D사무관은 “동기보다 승진에서 뒤처지는 게 싫어서 고민도 했다”며 “하지만 직장과 가정 양쪽에서 스트레스를 받느니 한쪽 일이라도 잘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1급 여성 공무원 6명뿐

과장 승진 이후엔 ‘유리천장’(여성의 고위직 승진을 막는 조직 내 보이지 않는 장벽)이 기다린다. 네트워크나 인력 풀이 적은 여성 공무원은 상대적으로 승진에 불리하다. 현재 중앙부처에서 국장급(2급) 이상 고위공무원 여성 비율은 5.7%(86명), 장·차관 등 정무직 공무원으로 가는 길목인 실장급(1급) 여성 비율은 2.3%(6명)에 불과하다. 여성 국장 E씨는 “암암리에 여성이 갈 수 있는 국장 자리와 개수가 정해져 있다”며 “직급이 올라갈수록 남성들의 네트워크가 공고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공직사회에서 여풍은 거세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공무원 5급공채(옛 행정고시) 합격자 중 여성 비율이 10년째 40%를 웃돌 정도로 엘리트 여성이 대거 공직사회에 유입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5~10년 뒤 국장단의 절반 이상이 여성으로 채워질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소통 능력 등 여성 고유의 강점이 각광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남성 국장 E씨는 “꼼꼼한 업무 처리나 소통이 필요한 자리는 여성 공무원이 평균적으로 남성보다 강점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며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지연과 학연에 연연하지 않기 때문에 공직사회가 더욱 투명해질 것이란 기대감도 있다”고 말했다.

심은지/심성미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