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이 4일 오후 중국 베이징 외교부 청사에서 왕이 외교부장을 만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문제 등 현안을 논의했다. 베이징=공동 취재단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이 4일 오후 중국 베이징 외교부 청사에서 왕이 외교부장을 만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문제 등 현안을 논의했다. 베이징=공동 취재단
중국 외교부가 한반도에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하는 것을 늦추면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 조치를 중단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4일 베이징을 방문한 송영길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다. 중국 정부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을 사드 배치 철회의 기회로 활용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송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의원 7명은 이날 베이징 중국 외교부 청사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장관급), 쿵쉬안유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급)를 만나 “한국 콘텐츠 유통 제한, 한국행 전세기 제한, 한국산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제한 등 중국의 경제 보복 조치는 오히려 중국에 대한 한국 국민의 감정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방중단 관계자는 전했다.

이에 왕 부장 등은 “중국은 한국의 의견을 중시하고,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경제 보복 조치와 관련한) 국면을 전환시키는 것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다. 왕 부장은 그러나 “최근 한국에서 사드 배치를 오히려 가속화하겠다는 발언이 나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가속화보다는 (사드 배치 프로세스를) 일시 중단하고 서로의 핵심 이익을 건드리지 않는 쪽으로 해법을 모색해야 할 때”라는 단서를 달았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의원외교를 통해 최근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한·중 관계에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목적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왕 부장은 그동안 김장수 주중 한국대사 등 우리 정부 측 인사들의 면담 요청에는 일절 응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왕 부장이 민주당 의원들을 직접 만난 것은 향후 치러질 대선에서 민주당이 집권할 것에 대비하는 차원이란 관측이 나왔다.

일각에선 방중 의원들이 중국 정부의 여론전에 이용당할 것이란 우려를 내놓고 있다. 그동안 중국 정부가 사드 한반도 배치 결정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 내세운 논리 중 하나가 “한국에도 적지 않은 반대 여론이 있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굴욕적 사대 외교’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정용기 원내수석대변인은 “중국이 민주당 의원들을 만나는 것은 민주당을 통해 사드 배치를 철회시키려는 의도임이 분명하다”며 “굴욕적 사대 외교로 대한민국 국민 얼굴에 먹칠하지 말라”고 비판했다.

중국 관영 매체는 이날 민주당 의원들의 방중이 한·중 관계를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못 될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관영 신화통신이 발행하는 참고소식망은 민주당 의원들의 베이징 방문을 보도하면서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들 분석에 따르면 이번 방중은 베이징과 서울 간 고도로 긴장된 관계를 완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베이징=김동윤 특파원/유승호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