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소박하지만 풍요롭다…'대지의 젖줄' 메콩강이 준 선물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껀터의 새벽 수상시장엔 삶의 활기가 넘치고…
영화 '연인'과 꽃의 도시 사덱에는 낭만이 흐르고…
영화 '연인'과 꽃의 도시 사덱에는 낭만이 흐르고…

수상시장에서 맞이한 아침
베트남의 경제수도인 호찌민에서 남쪽으로 약 170㎞ 떨어진 곳에 껀터(Can Tho) 시가 있다. 메콩 강의 하류에 자리한 껀터는 ‘메콩 델타’로 불리는 메콩 강 삼각주 지역의 최대 도시로 거주 인구가 100만명이 넘는다. 껀터에는 메콩 델타 지역에서 가장 큰 수상시장인 까이랑(Cai Rang) 시장이 있다. 오전 4시에 시작해 점심 이전에 파장하므로 일찍 가는 것이 좋다.
![[여행의 향기] 소박하지만 풍요롭다…'대지의 젖줄' 메콩강이 준 선물](https://img.hankyung.com/photo/201612/AA.13042344.1.jpg)
어둠을 천천히 가르던 배가 30분쯤 달렸을까, 강 저쪽 너머 하늘이 환해지기 시작했다. 일출은 어디든 근사하지만 배 위에서 보는 일출은 왠지 더 뭉클한 느낌을 줬다.
1시간여를 더 가자 까이랑 시장에 도착했다. 오전 6시가 조금 지난 시간인데 장은 이미 북적이는 시간을 넘긴 듯하다. 여전히 거래가 이뤄지고 있지만 조금은 여유로움이 흐른다. 흔들리는 물결을 따라 너울대는 파도를 타던 배는 엔진을 끄고 시장 안으로 섞여 들어갔다. 이쪽 배에서 저쪽 배로 옮겨지는 과일이며 채소들, 활기찬 흥정 소리, 사람들의 상기된 표정, 물건을 건네고 쌓는 바쁜 손길. 메콩 강 여행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이 풍경은 베트남을 더 특별하게 기억하도록 만든다.
과일·채소 등을 장대에 걸어둔 배


메콩 강의 작은 지류를 가다
메콩 강의 큰 줄기를 따라갈 때는 엔진으로 배가 달리지만 작은 지류를 지날 때는 물이 얕고 지류의 폭이 좁아 엔진을 끌 수밖에 없다. 열여섯 살부터 노를 저었다는 사공이 엔진을 끄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노를 젓는다. 작고 낮은 다리를 피해 배에 눕다시피 하기도 하고, 강가에 듬성듬성 있는 집들을 구경하며 천천히 메콩 강의 작은 줄기를 지났다.
태양은 뜨겁지만 물 야자나무 밑을 지날 때면 잠시 시원해진다. 이따금 나타나는 집들 마당에는 물이 찰랑찰랑 들어와 있고, 집 앞에는 배를 정박할 수 있는 작은 차고 같은 공간이 있다. 그 안에 소중하게 배를 보관하는 것이다. 땅보다 물길이 더 익숙한 사람들에게 배는 얼마나 소중한 도구일까. 어느 집에서 나온 엄마와 딸은 지나가는 만물상 배를 세우고 물건을 사고 있다. 메콩의 평온한 아침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꽃과 영화 ‘연인’의 도시

사덱이 외국인에게 유명해진 건 영화 ‘연인’의 무대였기 때문이다. ‘연인’은 소설가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베트남에서 겪은 중국인과의 사랑을 섬세하고 생생한 묘사로 되살려 낸 자전적 작품이다. 사덱에는 작가인 뒤라스가 실제 사랑한 사람의 집이 남아 있다.
사덱 시장 끝에 있는 프랑스풍의 고택(古宅)은 1895년에 지은 것이다. 작가와 후인가(家) 아들인 후인투이레가 사랑을 나눈 장소다. 고택 앞에는 강이 흐르는데 나룻배를 타고 메콩 강을 건너는 영화 속 여주인공의 모습이 떠올라서 뭔가 낭만적인 기분이 든다. 껀터의 빈투이 고택(Nha co Binh Thuy)에서도 ‘연인’의 일부 장면이 촬영됐다. 두 고택을 비교하며 영화를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베트남戰의 비밀요새에서 평화를
사덱 근처에는 쎄오?이라는 특별한 유적지가 있다. 베트남 전쟁 때 쓰이던 호찌민의 비밀요새 구찌 터널과 같은 곳이다. 전쟁의 흔적을 이 깊은 메콩 강에서 만날 줄은 몰랐다. 베트남 전쟁 당시 쎄오?에는 비밀 군사시설이 숨겨져 있었다. 이곳에 있는 수로는 지하갱도, 공사관, 임시처소 등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수로 옆에는 부엌, 회의장, 비밀 지하통로 등이 남아 있다. 전쟁 당시 미군은 끝까지 이곳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한다.
쎄오?의 수로는 수상시장에 갈 때 탔던 배보다 훨씬 작은 나무 카누를 타고 돌아볼 수 있다. 그 아름다운 풍경은 전쟁의 아픈 역사를 까맣게 잊게 한다. 밀림을 뚫고 깊게 들어온 햇살, 배가 물살을 가르는 소리, 가끔 들려오는 청량한 새소리. 희귀한 동물과 처음 보는 나무, 보라색 꽃을 피운 부레옥잠, 그 속에 숨겨진 참호들. 나무 덩굴이 만든 울창한 숲은 참호를 감쪽같이 가려준다. 이 멋진 수로를 통과하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시간만으로도 쎄오?은 충분히 가볼 만한 가치가 있다.
사덱에서 쎄오뀟까지는 택시나 차로 갈 수 있다. 거리는 24㎞ 정도로 멀지 않지만 연락선을 타야 하므로 1시간 정도를 예상해야 한다.
껀터만의 특별한 음식들





진유정 《나는 그곳에 국수를 두고 왔네》 저자 nauan@naver.com
여행 메모
호찌민에서 껀터까지는 현지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3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수상시장 투어는 숙소에서 연결해 주거나 강가에서 직접 예약할 수 있다. 대부분 오전 5시에 출발해 점심때 돌아온다. 까이랑 시장 구경을 먼저 하고, 1시간 정도 더 달려서 좀 더 규모가 작은 퐁디엔(Phong Dien) 수상시장을 들른다. 두 곳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는 메콩의 작은 지류를 따라가 쌀국수 면을 만드는 곳과 과일농장을 구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