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해변의 갑' 체팔루
'천공의 성' 닮은 에리체 "이보다 아름다울 수 없다"
석회암 절벽 끝에서 '돌침대 일광욕'
에메랄드빛 바다-하늘 '5 대 5'로 보이네
시칠리아=박병준 기자 real@hankyung.com
체팔루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
백사장은 꽤 길게 이어져 있어 일광욕을 하며 책을 읽거나 수영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긴 낚싯대를 이용해 고기를 잡는 현지인도 눈에 띄었다. 모두가 무언가를 하고 있지만 아무도 서두르거나 큰 소리를 내는 사람이 없었다. 체팔루의 중력은 다른 도시들보다 강한 걸까. 마치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해변을 빠져나와 중앙광장으로 가면 대성당이 보인다. 12세기에 지어진 노르만 양식의 건물이다. 이슬람의 영향을 받아 성당 내부엔 아랍 문양과 아라비아 문자가 새겨져 있다. 체력이 남아 있다면 체팔루의 모든 것이 내려다보이는 ‘로카 디 체팔루(Rocca di Cefalu)’란 바위산에 올라보자. 30여분 정도 계단을 올라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다.
하지만 정상에 닿았을 때 마주하게 되는 비현실적 풍경은 그 값어치를 한다. 붉은색 지붕으로 가득한 건물들과 푸른 바다의 조화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크로아티아를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약간의 기시감이 들 수 있다. 두브로브니크 성벽 위에서 봤던 그 풍경이다.
‘천공의 도시’ 에리체
지금은 이렇게 평화로운 곳이 숱한 침략을 받았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과거 시칠리아는 군사적 요충지란 이유로 그리스, 로마, 스페인 등 주변 국가로부터 끊임없는 공격을 받았다. 에리체는 바다에서 건너오는 적을 관찰하는 망루 같은 도시였던 것이다. 볼거리와 생각할 거리가 많은 동네다. 하루 묵으면서 충분히 여유와 사색을 즐길 만하다.
‘신의 항구’ 마르살라에서 신의 물방울을
상영이 끝나면 본격적인 투어가 시작된다. 거대한 와인저장고에 들어가니 숙성되고 있는 시큼한 포도의 향이 가득했다. 투어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시음회는 마지막 코스였다. 긴 원테이블엔 네 잔의 와인이 준비돼 있었다. 마르살라는 ‘주정강화 와인’으로 유명한데 이 와인은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해 제조과정에서 설탕을 넣은 게 특징이다. 달콤하면서도 도수가 높아 조금만 마셔도 취기가 돌았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라 차례로 와인을 마시니 만화 ‘신의 물방울’의 한 장면이 오버랩됐다. 투어가 끝나면 와인숍에서 다양한 마르살라 와인을 구입할 수 있다. 기념품용으로 좋다. 술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투어는 꼭 권하고 싶은 이유다.
‘터키인의 계단’ 스칼라 데이 투르키
해안가 인근 주차장에 차를 대면 모래사장을 따라 20분 정도 걸어야 도착한다. 계단을 오를 땐 바람이 많이 불어 조심할 필요가 있다. 신발을 벗고 걸으면 발바닥이 하얗게 변해 있다. 석회가루가 묻은 탓이다.
절벽 끝에는 일광욕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특이한 것은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돼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누워보니 파란 하늘과 에메랄드빛 바다가 정확히 5 대 5 비율로 눈에 들어온다. 햇살은 따뜻하고 얼굴을 스치는 바람은 시원하다. 시칠리아의 하늘, 바다, 바람, 햇살을 가장 편안한 자세로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여행의 화룡점정을 찍기에 더 없이 훌륭한 곳이다. 그렇다고 확신은 금물이다. 시칠리아 어딘가 여기보다 더 환상적인 곳이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이 음식 만은 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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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자동차의 운전석 위치는 한국과 같기 때문에 운행에 큰 어려움이 없다. 구글맵 앱(응용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내비게이션이 없어도 웬만한 관광지나 식당, 호텔을 찾아갈 수 있다. 시칠리아는 도로폭이 좁고 신호체계가 한국만큼 엄격하지 않다. 골목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차량도 있어 속도를 조절해가며 운전해야 한다. 주차는 유료 주차장이나 도로변을 주로 이용했다. 숙소를 예약할 땐 주차공간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