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지
전인지
박인비(28·KB금융그룹), 전인지(22·하이트진로), 리디아고(뉴질랜드), 에리야 쭈타누깐(태국)의 공통점은? 물론 116년 만에 부활한 올림픽 골프 경기 출전 선수들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또 다른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제자리 회전 스윙을 한다는 점이다. 이들 말고도 무수히 많은 여자 프로들, 특히 성적이 좋은 상위권 골퍼들이 제자리 스윙을 한다는 게 요즘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제자리 스윙이란 백스윙-다운스윙-임팩트를 거의 고정된 회전축을 중심으로 완성하는 스윙법을 말한다. 폴로스루-피니시는 골퍼마다 제각각의 형태로 이뤄지지만 임팩트까지는 상체와 머리의 좌우 움직임이 거의 없다는 게 공통점이다.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클래식 스윙 정확도 약점

박인비
박인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는 물론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도 제자리 스윙은 대세다. 세계 랭킹 1위 제이슨 데이(호주), 4위 조던 스피스(미국)도 상체와 머리를 고정하는 제자리 스윙을 한다. 체격이 좋고 힘이 센 ‘신인류 골퍼’들이 프로골프 무대에 속속 발을 디디면서 장타와 정확도를 함께 높여야 살아남을 수 있어서다. 백스윙 때 오른쪽으로 확실하게 체중을 이동시키고 몸통과 머리도 어느 정도는 오른쪽으로 옮겼다가 되돌아오는 고전적인 스윙법은 힘을 축적하기엔 좋다. 많은 챔피언들이 이런 스윙 방식으로 우승했다. 하지만 상체 움직임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어서 샷 결과에 오차가 날 확률도 함께 높아진다는 게 약점이다. 제자리 회전 스윙은 스윙 과정에서 몸이 움직이는 비중을 최소화하려는 의지의 결과물이다. 좌우 흔들림이 적은 만큼 샷의 일관성도 높아진다.

올림픽 골프 첫 금메달리스트인 박인비는 몸통을 회전시키되 클럽을 거의 수직으로 들어올렸다가 상체를 빠르게 돌리는 회전력으로 클럽을 끌고 내려와 던지는 스윙을 한다. 몸통 동작은 대부분 제자리에서 이뤄지며폴로스루와 피니시 때 몸통이 클럽을 따라간다. 무리가 가지 않는 최소한의 동작만으로 스윙을 하는 셈이다. 이런 제자리 회전 스윙으로 박인비는 커리어그랜드슬램(생애 통산 4대 메이저 석권)에 올림픽 금메달을 거머쥐는 ‘골든슬램’까지 일궈냈다

‘메이저퀸’ 전인지도 마찬가지다. 그는 백스윙 때 오른다리로 강하게 지면을 디딘 상태에서 상체와 머리를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임경빈 프로는 “머리꼭대기와 척추, 꼬리뼈를 연결하는 선이 회전축이 되고 이 회전축을 중심으로 몸통이 빠르게 회전하는 제자리 스윙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왼다리에 몸무게…‘스택앤드틸트’도 정확도 높아

리디아 고
리디아 고
제자리 스윙이 체중 이동이 잘 안 돼 비거리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클럽(헤드 샤프트 포함 무게 300g 안팎)이 백스윙 톱으로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순간 헤드 무게가 왼쪽으로 쏠리면서 체중도 이미 왼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역전의 여왕’이자 장타자인 김세영(23·미래에셋)처럼 제자리 스윙을 한 뒤 오른발을 박차 체중 이동을 해결하는 스타일도 있다. 이처럼 체중 이동은 요즘 프로들에게 큰 이슈가 아니라는 얘기다. 대신 빠른 제자리 회전 운동에 보다 더 집중을 한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견해다.

최송이 프로는 “임팩트 순간에 체중의 분포도를 정밀기기로 측정해 보면 체중이 뒷발에 오히려 더 많이 실려 있는 경우가 많다”며 “좌우 체중 이동보다 강한 회전에 더 신경 쓴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의식적으로 체중을 왼쪽으로 끌고 가려다가 오히려 스웨이(스윙할 때 상체가 상하 또는 좌우로 움직이는 일)되는 아마추어 골퍼들이 많다는 설명이다.

가장 전형적인 제자리 스윙의 달인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올 시즌 1승을 올린 이승현(25·NH투자증권)이 꼽힌다. 그는 머리와 척추를 중심으로 만든 스윙축을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클럽을 제자리에서 회전시킨다. 머리를 위아래로도 움직이지 않는다. 공이 멀리 날아가지는 않지만 정확도가 높은 샷을 구사한다.

여자프로골프 세계 랭킹 1위 리디아 고도 ‘제자리 스윙어’ 범주에 속한다. 백스윙할 때 오히려 몸통이 타깃 쪽으로 기울어지고 체중이 이미 왼쪽으로 옮겨져 있는 ‘스택앤드틸트(stack & tilt)’ 현상이 강하게 나타나는 게 리디아 고식 스윙이다. 샷의 정확도가 매우 높다. KLPGA 투어에서 올 시즌 7승을 올린 ‘남달라’ 박성현(23·넵스)도 백스윙 때 머리가 우측으로 움직이는 정도가 5㎝ 이내에 불과하다. 비거리 국내 1위(264.94야드) 인 파워 스윙의 달인이지만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것은 극도로 억제한다는 얘기다.

임경빈 프로는 “아마추어들은 거리를 내기 위해 좌우 스웨이를 많이 하는데 오히려 부정확한 샷의 원인이 되고 결국 거리도 못 내는 경우가 많다”며 “차라리 왼쪽에 체중을 쌓아 놓고 제자리 스윙을 하는 게 더 정확한 샷을 만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