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 알파치노가 청혼한 사보카…그 건물 그대로
영화 <대부>의 감동을 되새긴다
제주도의 13배 정도인 시칠리아는 영화와 인연이 깊다. <시네마천국> <말레나> <대부> <그랑블루>를 비롯해 알랭 드롱이 출연한 <레오파드> 등은 시칠리아의 소박한 마을 풍경과 코발트색 지중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칠리아 하면 ‘마피아’가 먼저 떠오르는 것은 1972년 개봉한 영화 <대부>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칠리아에서 마피아를 만나는 것이 아닌가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마피아는 시골 시칠리아를 떠나 로마 같은 대도시로 갔거나 미국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대부>의 감독 프란시스 코폴라는 시칠리아를 영화 속 주인공 비토 코를레오네의 고향으로 설정했다. 원래 코를레오네(Corleone)란 도시는 시칠리아 북서쪽의 팔레르모(Palermo) 근처에 있다. 영화에선 동부에 있는 포르차 다그로(Forza d’Agro)를 코를레오네라고 소개하고 있다. 섬 동부의 최대 휴양지 타오르미나에서 멀지 않은 언덕 위의 작은 마을, 사보카(Savoca)에서 <대부>의 주요 장면을 촬영했다.
사보카는 타오르미나에서 북쪽으로 약 27㎞ 떨어져 있다. 사보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바 비텔리(Bar Vitelli)가 보인다. 마이클로 분한 알파치노가 청혼하던 장소다. 사랑의 결실을 본 곳이라서 그런지 지금도 사진 명소로 인기가 높다.
이곳 입구엔 코폴라 감독을 기리는 금속 조형작품과 기념품 가게가 있다. 바 비텔리는 관광지라고 하기에는 생각보다 고적하다. 작은 길을 따라 올라가니 언덕 아래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꼭대기 근처에 있는 산타 루치아 성당은 결혼식 장면 등에 등장했다. 마을 중앙에는 영화 속에서 본 듯한 작은 부티크 호텔도 있다.
시칠리아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팔레르모
시칠리아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주도인 팔레르모는 시칠리아의 관문이다. <대부> 시리즈 중 3탄에 등장하는 ‘마시모 극장’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크고 유럽에서는 세 번째 규모인 오페라 발레 전용극장이다. 팔레르모는 기원전 8세기께 건설돼 페니키아, 로마제국, 비잔틴제국 등의 지배를 받았고, 아랍 지배 기간인 9~11세기엔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로 성장했다. 노르만족이 많은 유적을 파괴했지만 시칠리아인들이 힘을 모아 도시를 재건하면서 탄생시킨 아랍·노르만 양식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괴테는 팔레르모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했다. 굳이 괴테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도시는 너무나 인상적이다. 16세기 조각으로 이뤄진 아름다운 분수를 볼 수 있는 프레토리아 광장, 12세기부터 600년에 걸쳐 지어진 팔레르모 대성당, 노르만·비잔틴·이슬람 양식이 가미된 노르만 궁전 등 다채로운 유적지를 만날 수 있다.
그 안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시칠리아인들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다. 옛 시가지의 대부분은 항구 구역인 칼사와 부치리아가 차지한다. 외곽에 있던 특색 있는 레스토랑과 호텔들이 최근 옛 시가지에 들어서면서 이곳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시네마천국>의 배경지 체팔루, 팔라조 아드리아노
팔레르모 근처의 전원도시 바게리아(Bagheria)는 양떼목장, 언덕엔 그리스 신전이 보이는 곳으로 <대부> 3탄에 등장했다. 바게리아는 <시네마천국>의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고향이기도 하다.
<시네마천국>은 산속에 있는 조그만 마을 팔라조 아드리아노(Palazzo Adriano), 해변 휴양지 체팔루(Cefalu)가 배경이다. 체팔루는 하얀 모래사장이 있는 낭만적인 해변 휴양지로 인기가 높다. 둘러보면 주인공 토토가 고향을 떠날 때 배경이 된 기차역, 바다 장면들이 절로 떠오른다. 팔레르모에서 78㎞ 떨어져 있으며 아랍과 노르만·비잔틴 양식이 뒤섞인 두오모 성당, 전경이 아름다운 라 로카 바위 절벽, 마리나 광장 등 관광객의 눈을 사로잡는 장소가 많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휴양객들은 산을 배경으로 한 알록달록한 집들과 좁은 골목길을 누비고 다닌다. 바와 나이트클럽도 많아 배낭 여행자들도 자주 머문다. 특급호텔부터 게스트하우스까지 숙소 선택의 폭도 넓다. 체팔루 같은 곳에선 토토를 그리워하며 며칠 머물러도 좋을 듯하다. 토토의 어린 시절 주 무대인 팔라조 아드리아노에는 ‘파라디소 극장과 광장’이 있다. 주인공 토토로 분한 꼬마도 이 마을에서 캐스팅됐다고 하니 <시네마천국> 팬이라면 꼭 들러볼 만한 곳이다.
고대 유적과 휴양이 조화를 이루는 타오르미나
<니키타> <레옹>으로 유명한 뤽 베송 감독의 작품인 <그랑블루>. 장비 없이 맨몸으로 잠수하는 프리다이빙을 소재로 한 <그랑블루>는 바다와 사랑에 빠진 두 남자의 이야기다. 타오르미나의 이솔라벨라(Isola Bella) 해변은 영화를 기억하게 하는 곳이다. 다이빙 경쟁을 하다 결국 바닷속에 머물고자 한 남자들의 광기와 집착. 그들의 죽음의 순간을 진정한 자유로 묘사한 감독은 지중해의 아름다운 풍광을 영화 속 제3의 주인공처럼 표현했다.
타오르미나 필름 페스티벌과 오페라 페스티벌이 열리는 시칠리아 제1의 휴양지인 타오르미나는 해발 250m에 있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식민 도시로 건설된 낙소스의 멸망 이후 그리스인들이 이주해 건설했다. 뒤로는 에트나 산, 앞으로는 이오니아 해가 펼쳐지고 마을 정상엔 그리스 원형극장이 있다.
2000년이 넘은 야외극장에 올라가 봤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와 산을 타고 기어 올라오는 듯한 형상의 마을이 보였다. 이 장면을 보러 시칠리아까지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상적이다. 어디서나 흩날리는 꽃과 레몬향, 코발트색 시린 바다, 아름다운 유적지, 지중해성 온화한 기후까지 갖춘 곳이다. 시칠리아를 방문했다면 시간을 내서 방문할 가치가 있는 곳이다.
그리스풍의 바로크 도시 시라쿠사 시라쿠사의 두오모 광장을 걸으니 영화 <말레나>가 생각난다. 너무 예뻐 비극적인 삶을 살아야 했던 여성 말레나. 전 세계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 주인공(모니카 벨루치 분)이 또각또각 걸어간 곳은 시라쿠사의 두오모 광장이다. 시라쿠사는 낮엔 대리석에 반사된 햇빛, 밤엔 화려하게 쏟아지는 건물들의 불빛으로 보석같이 빛나는 고대 도시다. 관광과 역사의 중심지는 옛 시가인 오르티지아(Ortigia) 섬이다. 이 섬은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본섬과 세 개의 다리로 연결돼 있다. 기원전엔 채석장으로, 이후엔 감옥으로 사용한 독특한 형태의 동굴인 디오니소스의 귀를 비롯해 아르키메데스 광장, 대성당, 바로크 양식의 결정체인 두오모 광장 등이 있다. 둘러보면 시라쿠사의 낭만에 저절로 젖어들 수 있다.
숨 막히는 에올리안 제도의 아름다움
집배원 마리오와 노벨상 수상 시인인 네루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일 포스티노>도 시칠리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영화에선 나폴리의 작은 섬이라고 표현했지만 실은 시칠리아 동북쪽에 있는 화산군도 에올리안 제도의 살리나 섬에서 촬영했다.
에올리안 제도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자연유산지대다. 매년 7~8월이면 이탈리아 전역과 유럽에서 몰려드는 관광객이 수십만 명에 달한다. 에올리안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은 리파리 섬이고, 가장 작은 섬은 파란네아 섬이다. 에올리안 제도가 유명해진 것은 1950년대에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스트롬볼리>란 영화가 큰 몫을 했다. 영화로 인해 조그만 섬들은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떠올랐다.
시칠리아는 ‘이탈리아의 캘리포니아’란 별명을 얻고 있다. 와인 산지로 급성장했기 때문이다. 에트나 산기슭의 독특한 와인, 마르살라 지역의 단맛 나는 와인 등 시칠리아 전역에서 와인이 생산된다. 시칠리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즐기며 시칠리아 토착 품종인 네로 다볼라(Nero d’avola)로 만든 와인을 마신다면 기분이 어떨까.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아름다운 음악까지 곁들이면 최상의 안주가 따로 없을 것이다. 시칠리아를 가기 전과 후에 영화로 시칠리아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놓치지 말아야 할 시칠리아의 전통음식
팔레르모의 대표적 식당인 안티카포카체리아 샌 프란체스코(anticafocacceria.it)는 1841년에 개점했다. 이곳에서 시칠리아의 전통 음식을 모두 맛볼 수 있다. 빵 사이에 ‘밀차’라고 불리는 소나 돼지의 비장을 넣고 카치오카발(양젖이나 우유로 만드는 이탈리아 남부지방의 치즈)을 뿌린 햄버거인 파니카 뮤사(Panic’a meusa)가 이 집의 명물. 잘게 썬 소고기와 함께 굳은 흰 돼지 지방 등이 곁들여진다. 비장 위에 치즈와 레몬을 함께 뿌려 먹는다. 매장 한가운데에서 햄버거를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시칠리아엔 꼭 먹어볼 만한 음식이 많다. ‘파스타 알라 노르마’는 토마토 소스에 굵게 잘라 볶은 가지, 양파, 양젖으로 만든 시칠리아 전통 치즈로 요리한 파스타다. 노르마란 카타니아 출신의 작곡가인 빈첸초 벨리니(Vincenzo Bellini)의 오페라 ‘노르마’에서 유래했다. 요리 재료는 시칠리아의 에트나 산을 상징한다.
작은 튜브라는 뜻의 시칠리아 전통 과자 ‘카놀리’도 추천할 만하다. 밀가루를 대롱 모양으로 튀겨 속을 리코타 치즈로 채운다. 영화 <대부>에서 돈 알토벨로가 극장에서 먹다가 독살되는 과자다. 팔레르모 지방에서 유래했지만 지금은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져 어디서나 맛볼 수 있다. 얼음을 갈아 만든 시칠리안 빙수 ‘그라니타’도 맛보자. 이탈리아 시칠리아주에 있는 카타니아 지방에서는 아침식사로 눈사람 모양의 빵 브리오슈와 함께 그라니타를 즐긴다.
시칠리아=조은영 무브매거진 편집장 travel.cho@gmail.com
여행 팁
시칠리아의 기후는 전형적인 지중해성 날씨다. 온화한 겨울 날씨로 사계절 모두 방문하기 좋다. 7~8월은 성수기여서 세계 각국에서 여행객들이 몰려오기 때문에 조용히 여행을 즐기고 싶은 사람은 봄이나 가을에 찾는 것이 좋다. 한국에서 시칠리아 직항편은 없다. 이탈리아 또는 유럽의 주요 도시를 거쳐서 가야 한다. 시칠리아에는 총 세 개의 공항이 있다. 팔레르모의 팔코네 보르셀리노(Falcone-Borsellino)국제공항과 카타니아의 폰타나로사(Fontanarossa)공항이 대표적이다. 트라파니에 있는 빈센조 플로리오(Vincenzo Florio)공항은 저가 항공사 위주로 운영된다. 세 곳 모두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및 유럽의 주요 도시와 연결된다. 인천~로마 약 12시간, 로마~팔레르모공항까지 1시간, 카타니아공항까지 1시간10분 걸린다.